[딜사이트 최유라, 이우찬 기자] KCC가 경쟁사 중 한곳인 노루페인트의 모기업 노루홀딩스 지분을 대거 매집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7%를 상회하는 지분 매입은 단순투자가 아닌 일반투자로 이사 선임을 비롯해 다양한 주주활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KCC는 경영참여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올초 불거진 노루페인트의 유성제품 편법 유통에 관해 업계 1위 KCC가 선전포고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시 페인트업계는 노루페인트가 환경에 유해한 유성제품을 유통했다며 자발적 협약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KCC는 지난 6월27일 처음 지분을 사들이며 포문을 열었다. 이날 노루홀딩스 주식 4만4515주를 매수했다. 7월에는 23거래일 동안 매일 1만~4만주의 주식을 사들였다. 지난 8월5일 지분율 5%를 넘겨 보고의무가 발생했다. 이달에도 주식 매수는 이어졌다. 지난 11일 한꺼번에 10만6302주를 샀다. 보유 주식 수는 95만2844주 지분율은 7.17%에 달했다. 자기 자금 232억원이 투입됐다.
KCC의 이번 주식 투자는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사항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KCC는 "대표이사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KCC는 정몽진·정재훈 각자대표 체제다. 2명의 CEO 각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다. 노루홀딩스 주식 매수에는 오너인 정몽진 대표이사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관측된다. 동종업계 기업 지분을 수백억원을 들여 7% 이상까지 확대하는 데에는 오너의 의중이 실려있다는 게 합리적인 설명으로 평가된다.
KCC는 "일반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일반투자는 단순투자에서 나아가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단순투자가 시세차익, 배당 수익, 의결권 행사 등에 국한돼 있다면 일반투자는 이사회 개입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평가된다. 경영권 참여는 아니지만 이사 선임 반대, 배당 제안, 정관 변경, 위법 행위 임원 해임 청구 등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KCC와 노루홀딩스뿐만이 아니다. 호반그룹의 LS 지분 매수, 호반그룹과 반도건설의 한진칼 지분 매수, 유진 그룹의 동양 지분 매수 등이 비슷한 사례다. 일부 기업의 경우 초기 일반투자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가 경영권 인수 추진 사실을 공식화한 경우도 있다.
KCC의 이 같은 행보는 올초 불거진 노루페인트와 업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도 분석된다. ESG 경영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 노루페인트에 업계 형님 격인 KCC가 견제구를 날렸다는 시각이다.
KCC와 강남제비스코, 삼화페인트공업, 조광페인트 등 주요 페인트 제조업체들은 노루페인트가 2022년 환경부와 체결했던 자발적 협약을 위반했다며 올해 1월 공동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앞서 환경부는 노루페인트의 '워터칼라플러스'가 현장에서 유성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노루페인트에서 판매대리점에 유성수지를 대량으로 공급한 것은 유성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조한 것으로 즉시 회수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워터칼라플러스'는 지난해 3월 노루페인트가 출시한 자동차 보수용 베이스코트(차량을 보수할 때 최종 단계에서 색상을 구현하기 위해 칠하는 페인트)다. 출시 당시 노루페인트는 워터칼라플러스를 수용성 페인트라고 홍보했다. 환경부는 워터칼라플러스가 실제 유성이라고 봐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에 따라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에 수용성 여부 확인 실험을 의뢰했다.
실험 결과 수용성이 아닌 유성으로 사용해야 정확한 색상이 구현된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특히 해당 페인트의 색상 편차가 0.5일 때 VOCs(휘발성유기화합물) 함량은 766g/L을 기록했다. 이는 대기환경보전법에서 정하는 기준(200g/L)의 3.8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VOC는 대기에서 질소산화물(NOx)과 함께 광화학반응으로 오존 등 광화학산화제를 생성해 광화학스모그를 유발한다. 또 벤젠과 같은 물질은 발암성물질로 인체에 매우 유해하다.
노루페인트는 업계가 공동 성명을 발표한 뒤 자체 재현성 테스트를 실시했다. 자체 검사 결과 품질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언론에 밝혔다. 자동차 보수용 도료시장의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환경부와 협의를 거쳐 워터칼라플러스 제품 판매 중지를 비롯한 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노루페인트는 당시 "공업용 유성 도료가 자동차 보수용 대리점에 있는 것 자체는 문제되지 않고 해당 도료가 자동차 정비소로 넘어가는 순간 법을 어기게 된다"며 "자동차 보수용 대리점에서 공업용 도료를 유통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공업용 도료 공급을 원하는 대리점에 단계별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노루페인트가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에 관해 환경부와 맺은 자발적 협약을 위반해 뒤통수를 때렸다"며 "자체 실험을 진행하고 개선 의지를 밝혔으나 시장에서 유성제품이 여전히 유통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성제품의 경우 도심 대기환경을 저해하고 인체 건강에도 유해하다"며 "수성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은 ESG 경영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이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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