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앞두고 은행권의 전략적 관심이 '발행 경쟁'보다는 실제 활용 가능성을 좌우할 '유통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주요 컨소시엄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제도화 이후 시장 안착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유통 채널 확보가 부상하고 있어서다. 특히 단기간 내 시장 파급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이용자 풀과 유동성을 보유한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협력이 사실상 필수 요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지주는 최근 BNK금융지주, iM금융지주, SC제일은행, OK저축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공개된 사례 가운데 4대 금융지주가 컨소시엄 형태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구체화한 것은 하나금융이 처음이다. 단순 발행을 넘어 제도화 이후 실제 사용처와 유통 경로까지 염두에 둔 구조를 선제적으로 설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12월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시장에서는 두나무가 네이버파이낸셜과의 합병을 추진 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해당 논의가 현실화될 경우 하나금융–네이버–두나무로 이어지는 확장된 협업 구도까지 염두에 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초기 시장의 주도권이 발행 주체가 아니라 '누가 유통 채널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데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와 손잡은 컨소시엄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만 은행권이 선택할 수 있는 유통 파트너는 제한적이다. 원화마켓 거래대금 기준으로 업비트와 빗썸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의 약 97%를 차지하는 양강 체제가 굳어진 상황에서, 코인원·코빗 등 후발 거래소들은 거래량과 인프라 측면에서 체급 차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해외 사례 역시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미국 서클(Circle)이 발행한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는 코인베이스와의 결합을 통해 빠르게 시장에 확산됐다. 미국의 비교적 명확한 규제 환경과 달러 기반 생태계라는 전제가 작용했지만, 초기 유통 단계에서 대형 거래소의 유동성과 이용자 기반을 활용한 전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국내 환경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조기 안착을 위해 1·2위 거래소와의 협력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특히 시장 초기에는 일반 사용자 수요를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형 거래소와의 협업 필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미 간편결제와 카드 인프라가 촘촘히 구축된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소비자 결제 영역에서 즉각적인 대체재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초기 활용처가 '일상 결제'가 아니라 거래소 내 정산·교환·유동성 관리 등 금융 인프라 역할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시장 초기에는 일반 소비자들이 기존 결제 수단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할 동기가 크지 않다"며 "대형 거래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거래 마켓을 열어주면 초기 사용성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은행과 거래소의 시너지가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재편 흐름 속에서 거래소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두나무는 퍼포먼스 마케터, 제휴·파트너십 마케팅, 개인정보 보호 전문 변호사, 정보보호 인증 운영 담당자 등 전방위 영역에서 대규모 채용을 진행 중이다. 빗썸 역시 빗썸페이 프론트엔드 개발자, 블록체인 핵심 기술 조직 팀장과 시니어 시스템 엔지니어, 가상자산 정책 분석 담당자 등을 모집하며 조직 확장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를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이후를 겨냥한 선제적 포석으로 해석한다. 규제 프레임워크가 마련될 경우 거래소 입장에서는 단순 매매 중개를 넘어 결제·정산·유통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대형 거래소들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인력과 조직을 공격적으로 보강하며 투자에 나서는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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