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금융위원회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를 둘러싼 논쟁에서 한국은행이 요구해 온 '은행 지분 51% 룰'을 반영한 디지털자산기본법(가상자산 2단계 입법) 절충안을 내놨다. 통화·지급결제 안정성을 앞세운 한은의 논리를 수용한 모양새지만,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과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둘러싼 금융위와 한은의 충돌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가 나오며 이번에도 입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최근 국회에 보고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주요 쟁점 조율 방안'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관련해 은행 중심 컨소시엄(지분 50%+1)부터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기술기업이 최대 주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열어두고, 시장 안정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가 검증될 경우 기술기업의 참여 비중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한은이 요구해 온 '관계기관 만장일치 합의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구를 두는 대신 협의체 형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화·지급결제 정책과 관련한 사실상의 거부권(veto) 확보 성격이 강하다는 점과 함께 한은이 이미 금융위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금융위가 한은의 의견을 일부 반영한 절충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금융위는 당초 지난해 말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안을 제출할 계획이었으나,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권한 배분을 둘러싼 한은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입법 일정이 해를 넘겼다.
이번 논쟁을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는 2021년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사태를 떠올리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당시 금융위와 한은은 빅테크 기업의 결제 투명성과 지급결제 권한을 놓고 정면 충돌했고, 이주열 당시 한은 총재가 해당 법안을 '빅브라더(사회 감시·통제 권력)'에 빗대 비판하면서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후 법안은 한은의 지급결제 권한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수정되며 사실상 한은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다만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이번 스테이블코인 논쟁에서 한은의 명분이 당시보다 약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이 민간 주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지급결제 시스템 역시 중앙집중형 구조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형 구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요국 규제 역시 발행 주체의 지분 구조보다는 준비자산 관리, 상환 의무, 이용자 보호 등 행위·리스크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어, 지급결제 안정성을 이유로 한 지분 규제가 글로벌 규제 흐름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금법 개정 당시에는 플랫폼 기업이 지급결제 정산 계좌를 보유할 수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어서 지급결제 안정성이라는 한은의 명분이 비교적 명확했다"며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한은의 명분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률적 측면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은행 지분 51%와 같은 구체적 지분 요건을 법에 명시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 위법 소지가 크다"며 "법률보다는 외부평가위원회 심사 시 인가 과정에서 당국 간의 합의를 하는 통해 조율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이르면 이달 중 해당 내용을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지만, 정치권과 시장의 반대 여론이 거센 만큼 실제 법안 통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한은이 고수해 온 '은행 주도 51% 룰'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고 산업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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