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진철 편집국장]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는 5월, 한국증시가 새 역사를 쓰며 크게 요동쳤다. 지난 15일 코스피지수가 장중 8000포인트를 찍고 급락하더니 20일에는 7200포인트선까지 밀렸다가 22일 7800포인트선으로 회복하고 26일에는 6거래일만에 다시 8000포인트를 터치했다. 미국 금리 급등과 글로벌 위험자산 회피 심리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삼성전자 파업 여부를 결정짓는 노사 협상 이슈가 한국증시를 출렁이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증시는 '박스피'라는 조롱을 받았다. 기업 실적이 좋아도 주가는 제자리였고, 세계 최고 수준 제조업 경쟁력을 갖고도 글로벌 시장에서 그닥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들 두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코스피가 3000포인트를 넘어 올해 7000포인트를 단숨에 돌파하고 '팔천피'에 다다르자 시장에서는 더 이상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때 저평가의 상징이던 한국 시장이 이제는 프리미엄을 논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의미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자본시장 개혁이 맞물리면서 한국 증시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역대급 실적과 주가 상승률로 가장 유망한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인공지능(AI) 생태계를 이끌면서 한국 반도체는 그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수혜주로 꼽힌다. 여기에 조선·방산·원전·로봇·전력 등 한국의 주력 산업들도 재조명받고 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서만 100조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섰지만 개인투자자와 기관이 매물을 받아내며 코리아 프리미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맡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추진 중인 자본시장 개혁도 시장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중복상장 제한,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추진, 주주 충실의무 강화, 불공정 거래 근절 등 과거 한국증시를 짓눌렀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을 걷어내기 위한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주가 조작하면 패가망신"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강한 메시지까지 나오면서 시장 질서 정상화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스피 급등락의 요인을 따져보면 코리아 프리미엄의 완성이 시기상조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갈등 이슈에서 보듯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가 휘청이는 취약한 구조를 여실히 드러냈다. 올해 지수 상승장 속에서도 상당수 종목은 오히려 하락했다는 점은 'K자형 양극화'의 단면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기업 내부 경쟁력이다. 막대한 이익 배분을 둘러싼 삼성전자 성과급 이슈는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AI 반도체 글로벌 경쟁은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지는데 이번 삼성전자의 사례를 보면 노사 갈등은 차치하더라도 성과급 배분을 놓고 사내 사업부별 임직원은 물론 주주와의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빅테크나 대만 TSMC는 성과급·배당·투자 원칙 측면에서 노사 갈등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성과 보상이 이사회와 제도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해마다 성과급 기준을 놓고 갈등이 반복된다. 역대급 이익으로 임직원들의 기대감은 높은데 성과 보상 체계에 대한 기준과 신뢰를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처럼 밀어붙이는 방식만으로는 유능한 인재를 유치할 수 없다. 투명한 보상과 소통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는 성과급 갈등이 새로운 형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와 같은 엘리트 집단이 회사 발전보다 당장의 월급봉투에 집착하고 내부 결속에 상처가 생긴다면 장기 성장 기반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리아 프리미엄은 '코스피 1만 달성'이라는 장밋빛 숫자가 아닌 신뢰에 기반한다. 외국인은 물론 개인과 기관투자가 모두 한국 증시를 단기 차익을 노리는 것이 아닌 장기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 증시가 안정적인 장기 투자처로 인식되려면 시장의 공정성, 기업의 책임경영, 산업 경쟁력, 노사관계 안정성이 수레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환원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성과 배분 역시 글로벌 기준에 맞는 안정성과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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