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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너머 빅테크로…정의선의 도전
박준식 자본시장부장 부국장
2026.04.24 08:25:13
한국 대기업 글로벌 테크기업 변신 첫 시도…새만금 성공은 호남 산업화 초석
이 기사는 2026년 04월 23일 17시 44분 유료콘텐츠서비스 딜사이트 플러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준식 자본시장부장 부국장] 유튜브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하루 일과를 엿볼 수 있다. 저녁 아홉시 반에 잠을 자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난다. 여섯시 반에 출근해 오전은 회사 일을 하고, 오후는 현장을 찾거나 사람을 만나 시류를 청취한다. 하루에 서너번 운동하려 노력하고, 세끼를 챙겨 먹는다. 


2024년 전경련 행사에서 발언한 정 회장의 하루는 선대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과 꼭 닮아있다. 아침은 조금 먹고, 저녁 자리가 길어지면 가끔 대포 한잔 하는 수준. 재벌 3세답지 않은 소탈함은 다른 영상에서 확인된다. 할아버지와 새벽 밥상머리에서 직접 배운 일과다. 


기자 초년병 시절 재계 관계자의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적이 있다. 이른바 뻗치기 취재의 결과였다. 임원이던 그는 조문에 그치지 않고 빈소 식당에 앉아 몇몇 기자들과 어울렸다. 당시 한 선배 기자가 왜 당장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느냐고 묻자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을 삼갔다. 


정몽구 회장이 경영을 이끄는 동안 정의선 회장은 실제로 본인을 좀체 드러내려하지 않았다. 카리스마적인 아버지 밑에서 묵묵히 실력을 쌓고 인내를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200명에 가까운 집단 지성을 모았다. 협력사를 망라한 차세대 핵심 인재들의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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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렸던 사자가 튀어오르는 것처럼 정 회장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나 IT 기업 출신 등 이른바 인텔리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왔다. 원칙은 하나, 혈연·학연을 배제하고 실력 중심의 용인술로 핵심 전문가를 배치하는 것이다. 



정 회장은 총수에 오른 지 6년 만에 이달 미국 '세마포 월드 이코노미 2026' 참석해 그룹이 인공지능(AI)·로보틱스·수소를 미래 3대 축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미래기술 회사가 될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이른바 빅테크 선언이다. 


현대차는 올해 이미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차세대 기술을 앞세워 이른바 'AI 로보틱스 쇼크'를 일으켰다. 제조사를 넘어 AI 피지컬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한 것이다. 유압식이 아닌 전동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는 2028년 양산된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남은 건 아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지난해까지 누적손실은 1조5000억원이 넘고 그동안 들인 돈도 3조3000억원을 웃돈다. 양산 계획을 구체화하려면 40조원을 웃도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아 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IPO)가 성공해야 한다. 


정주영의 장손인 정의선은 할아버지가 완성한 자동차 제조업의 밑그림에 로봇이라는 새로운 피지컬 플랫폼을 결합하는 구조를 꿈꾸고 있다. 단순 투자가 아니라 현대차를 제조와 빅테크 플랫폼이 결합한 새로운 글로벌 기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경쟁자는 테슬라 정도다.


제조업 DNA를 AI 빅테크로 바꾸는 작업은 물론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 같다. 모빌리티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에 로봇과 AI 기반 물리적 플랫폼을 동시에 육성해야 한다. 사실상 머스크의 테슬라보다 낫고, 중국 BYD보다 경쟁력을 갖춰 아마존을 뛰어넘어야 하는 도전이다. 


성공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일단 테슬라보다 나은 점이 있다. 자동차 제조에 있어 글로벌 3위로 전기차(EV)도 미국 시장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망하기 전까지 돈이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품질 원가 공급망 측면에서 제조 역량이 세계 최정상급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스마트 팩토리는 사실 단순한 신사업이 아니라 제조업의 다음 단계다. 테슬라를 실제로 넘어서려면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데이터 네트워크를 확보해야 한다. 부품 공급망 구조와 딜러 네트워크를 넘어서야 하는데, 그 열쇠는 엔비디아와의 협업이다. 


로보틱스 사업도 5~10년 동안은 ROI(투자수익률)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금을 태우는 블랙홀 사업이 되지 않으려면 실제 노동생산성 급증을 증명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환하는데 있어서는 포티투닷 인수와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지 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상징적인 것은 한국의 재벌 기업이 글로벌 테크기업으로 변신하는 게 가능할 것이냐의 문제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지만 그럼에도 승산이 있어보이는 배경엔 역대 가장 이 도전에 호의적인 정부와 지도자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는 새만금이다. 


현대차는 이재명 정부가 만든 국민성장펀드를 활용할 계획이다. 새만금에 로봇 생산기지를 만들 계획인데, 주목할 점은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에 상생단지 구상을 제안한 것이다.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 1, 2, 3차 협력사까지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이 분명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새만금의 현대차 투자유치를 발표하며 정 회장을 가리켜 할아버지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거라고 말한 장면은 국민에 각인됐다. 현대차가 성공한다면 그건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이루지 못한 호남 산업화 초석이 된다. 그래서 이 꿈은 정의선 만의 도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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