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안위와 경제 주권을 지킬 전략 자산이자, 꺼져 가는 제조업에 다시 불을 지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전쟁의 골든타임을 사수할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낡은 규제를 걷어낸 '특구(特區)'에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테슬라 '옵티머스'와 맞붙을 현대차그룹 '아틀라스'부터 생존을 위해 로봇 기업으로 변신하는 부품사의 사투, IPO(기업공개)와 동반성장펀드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흐름까지 치열한 로봇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부터 전북 새만금 지역에 4000억원을 투자해 로봇 제조·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국내 로봇 생태계 강화 측면에서 통 큰 투자라고 해석하지만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미국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BD)의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국내 여론과 규제 당국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중복상장 규제를 앞세워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은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핵심 자산의 해외 상장이 자칫 정부 기조에 반하는 행보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BD 상장의 경우 정 회장을 비롯한 특정 주주에게 상장 결실이 집중된다는 점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 중복상장 규제 곧 발표…BD 나스닥 상장
16일 금융업계 등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2분기 중으로 중복상장 규제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8일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을 정한데 따른 후속 작업의 일환이다.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불리는 중복상장은 모회사 주주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판단될 경우 추진할 수 없다.
주목할 부분은 상황에 따라 예외적으로 중복상장 추진을 허용하는 틈새다. 금융당국은 ▲상장 필요성 ▲주주와의 소통(동의) ▲주주 보호 ▲사업적 독립성 ▲경영 독립성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할 경우 예외적으로 상장을 허용할 방침이다. 특히 정부는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에너지저장장치(ESS), 우주산업 등 첨단 기술을 '맞춤형 기술특례상장' 대상에 포함시켰다. 로봇산업 역시 국가전략기술로 분류된다면 중복상장 예외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승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AI와 로봇 등 성장산업에 대해 중복상장 예외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고, BD가 로봇 분야 대표 기업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보수적으로 본다면 일반주주 동의가 요구될 수 있는데, 일정 지연 요인이 된다"고 평가했다.
현대차그룹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지만, BD의 나스닥 상장 시점은 내년 초가 유력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반기 중으로 예비심사 청구와 주관사 선정을 거친 뒤 하반기 공모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BD의 상장 기한은 지난해 6월까지였지만, 현대차그룹은 BD의 IPO 시점을 미뤘다. BD가 매년 적자를 기록한 탓에 제대로 된 기업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스닥의 경우 적자 기업의 상장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은 없지만, 상장 이후의 주가는 수익성에 따라 향방이 갈린다.
그 대신 현대차그룹은 조(兆)단위 투자를 이어가며 BD의 연구개발(R&D)을 지원했다. 실제로 정 회장과 현대차그룹은 5년 동안 BD가 실시한 총 4차례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약 3조원을 투입했다. BD 주요 주주 지분율은 지난해 말 기준 ▲현대차그룹 미국 투자법인(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 HMG 글로벌 56.5% ▲정 회장 22.6% ▲현대글로비스 11.3% 등이다. HMG 글로벌은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가 지분 49.5%, 30.5%, 20%씩 들고 있다.
◆ '로봇주' 수혜…더블카운팅 우려, 대규모 국내 투자로 상쇄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BD를 상장시키려는 표면적인 배경에는 미국 기업이라는 점이 자리 잡고 있다. 애초 미국에서 탄생한 BD는 미국 정부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받았으며, 군사용 로봇을 개발하며 성장했다. 국내에서 중복 상장과 관련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BD가 상장해야 하는 이유 역시 명확하다. 아틀라스 양산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비용이 불가피해서다. 자금 조달 규모 측면에서도 미국증시가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다.
문제는 이재명 정부의 중복상장 규제에 자회사의 해외거래소 상장이 포함돼 있어 BD의 나스닥 상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다. 현대글로비스가 제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가 보유한 BD 주식수는 1년 전보다 60만8746주(0.3%포인트) 늘었다. 현대글로비스가 해당 주식을 확보하기 위해 투입한 현금이 891억원이라는 점으로 미뤄볼 때 BD의 기업가치는 약 30조원이며, 정 회장 주식가치는 7조원으로 추산된다. 만약 주당 투입단가(14만6400원)로 계산하면 BD 기업가치와 정 회장 주식가치는 각각 35조원과 8조원으로 더욱 늘어난다.
BD가 번듯한 결실을 내놓은 것은 올 1월 미국에서 열린 'CES 2026'에서다. 차세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투입 계획을 밝혔다. 현대차그룹 주가는 아틀라스 공개를 기점으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예컨대 현대차 시가총액은 102조원을 돌파했으며, 아틀라스 액츄에이터를 공급하는 현대모비스 주가는 50만원을 터치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코리아 밸류업' 정책과 중복상장 규제 가이드라인은 현대차에 적잖은 부담이다. BD가 미국 법인이긴 하나, 현대차 주가에 로봇 사업의 가치가 이미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블 카운팅' 논란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차가 2024년 10월 성공적으로 인도 법인을 상장시킨 사례가 있지만, 로봇 관련 이슈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인도 법인의 경우 신시장 공략이라는 명분을 갖췄지만, BD는 핵심 결실을 통째로 떼어내는 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의선 회장이 BD의 주요 주주(22.6%)라는 점은 이번 상장을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지배구조 개편과 연결 짓게 만든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상장을 통해 확보될 자본이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우선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BD IPO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이라며 "특히 최대 수혜자는 정 회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주주의 회수 극대화가 주주 희생을 전제로 할 경우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코리아 밸류업'에 역행하게 된다"며 "새만금 투자가 나스닥 상장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깊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BD 나스닥 상장은 해당 법인이 결정하고 추진할 사안"이라며 "BD IPO가 확실하게 결정된 사안이 아닌 만큼 중복상장 이슈나 국내 투자 배경 등과 연결 짓는 시각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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