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올해 사상 최고인 200조원의 수익을 올린 국민연금이 이른바 사회적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 성과에 비하면 1%에도 미치지 않는 옥의 티와 같은 대체투자 실패 홈플러스 건을 두고 정부와 사정기관들이 너나할 것없이 달려들어 망신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론에 기댄 비난을 퍼붓는 것이다.
국민노후자금 1000조원 이상을 운용하는 고급인력들을 전주로 쫓아낸 데 이어 포트폴리오 운용의 기초적인 상식도 모르는 문외한 사정 인력들이 지나친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험지 악조건에서도 국민들의 자금을 불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하나 둘 지쳐서 해외 운용기관으로 빠져나가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민연금 기금은 약 1213조 원으로 시작했지만 10개월 만에 1400조원을 돌파하며 약 200조 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웅크렸던 한국 주식시장이 이재명 정부 들어 주주권익을 기치로 상법 개정과 제도 보완에 힘입어 세계 증시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한 덕분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역시 위탁운용사를 다변화하고 포트폴리오 비중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형 반도체주의 상승에도 적절히 올라타는 전략을 발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금운용본부의 전략과 수익을 기반으로 그간 우려돼 왔던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은 2057년에서 2090년으로 당초 예상보다 33년 정도나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 200조 수익에도 정치권·금융당국·수사기관 난타
성과를 기반으로는 상을 받아야 할 국민연금은 그러나 홈플러스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 논란으로 정치권과 금융당국, 수사기관으로부터 동시다발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로 지나친 질타를 받은데 이어 검찰과 감사원, 금융감독원 등까지 나서 수사와 검사를 진행하자 실무자들은 사실상 실신 상태다. 공무직 운용사 실무자들을 마치 범죄 피의자처럼 수개월째 직간접 조사하면서 반복적인 보고서 및 사유서 작성을 압박하자 상당수 실무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사실상 정상적인 운용 업무가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단일 투자 손실을 전체 운용 능력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에 설득력이 있다. 기금 전체의 성과와 포트폴리오 구조를 고려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1988년 기금 설치 이후 누적 평균 수익률은 약 7% 수준으로,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인 성과를 이어온 것으로 평가된다.
꾸준한 성과를 냈지만 홈플러스 회생절차는 정치적 이슈로 번지면서 애꿎은 국민연금에 포화가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15년 MBK파트너스를 통해 홈플러스에 총 6121억원을 투자해 현재까지 배당금·리파이낸싱 등을 통해 총 3131억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가치 평가를 반영할 경우에도 9000억원 수준의 잔여 회수 대상 금액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원금대비 손실이 날 가능성은 적은데도 불구하고 당장의 3000억원 가량 미회수 채권을 두고 사정기관들이 열을 올리는 것이다.
정치권은 투자 심사 과정과 위탁운용사 선정 절차의 적정성을 둘러싸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달 정무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RCPS·보통주 장부가치 하락을 이유로 의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전액 손실 가능성을 주장했다. 일부 의원들은 국내 사모펀드 운용자산 순위 1위인 MBK파트너스를 투자운용사로 선정한 실사 자료까지 요구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사모 대체투자업계의 수위권 선정을 결과에만 치중해 실패라고 규정하면서 운용 실무자들을 몰아붙인 것이다.
감독·수사기관의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감사원은 연기금 대체투자 운용·관리 실태 감사를 예고했고, 금융당국은 MBK파트너스 등 위탁운용사의 회계 처리 및 가치평가의 적정성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 단일 투자 건 과대 해석, 기금운용 위축 우려
전문가들은 이런 맥락에서 전체 포트폴리오 운용의 전략을 생략하고 단일 투자 건을 과도하게 해석할 경우 국민연금의 운용 독립성이 훼손되고 본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연금의 핵심 역할이 장기적·안정적 수익 확보인 만큼 특정 사안이 전체 운용 전략을 경직시키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오히려 국민들이나 노후자금에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운용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거나 투자 전략이 지나치게 보수화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실제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투자를 분석하면 국내주식 비중이 약 14.8%(약 196조원) 국내채권 비중 약 24.6%(약 325조원) 해외주식 비중 약 36.8%(486조원) 등으로, 해외주식이 국내보다 두 배 이상이다. 자산증가에 따라 해외로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국내보다 해외비중이 두 배 이상 높은 이유에는 말많은 국내 주식투자를 줄이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전체 포트폴리오 대비 대체투자 비중은 16.2%(약 214조원)로 낮은 편인데 여기서 부동산을 제외한 사모대체 투자가 한자릿 수인 상황에서 홈플러스 건 등에 대한 일부 문제를 과도하게 비난할 경우 기금운용본부의 투자 비중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국민연금은 올해 사모펀드에 대한 출자사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전체 수익 기반이 주로 주식·채권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대체투자 한두 건의 손실이 기금 안정성을 흔들 수도 없는데 시장을 정치권이 위축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사실 국민연금의 홈플러스 투자 건은 MBK파트너스라는 운용사에 대한 투자 포트폴리오 가운데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앞서 국민연금은 2011년 MBK파트너스의 '팬아시아 펀드'에 1772억원 투자해 4341억원을 회수하며 2배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블라인드 펀드 3-2호에서도 1575억원을 투자해 3400억원을 회수해 이미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국민연금이 신화 속에 나오는 마이더스의 손이 아닌 이상 투자 건들이 100% 성공하는 것이 아닌데도 관련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이 실패 한 건을 지나치게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한 대처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홈플러스 투자 당시엔 어떤 금융투자사도 국민연금의 RCPS·보통주 조건을 부러워했다"며 "법적으로 계약상 유리한 구조로 진행한 것을 두고 정치권과 사정기관이 과도한 외부 압박을 이어간다면 이는 기금운용 자체를 중장기적으로 경직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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