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방산 업계 재편과 회장 대관식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 매입을 위해 50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창공(蒼空)'을 향한 김 부회장의 방산 영토 확장의 서막이 시작됐다.업계에서는 김 부회장이 주도하는 이번 지분 투자 추진의 배경에 풍산 인수 결렬에 따른 전략 수정, 현대자동차·대한항공 등 경쟁사들과의 구도, 그룹 경영권 승계 과정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려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다만 KAI 인수의 핵심 전제인 정부의 민영화 방침 여부가 여전히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딜사이트는 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의 KAI 지분 인수 추진 배경과 김 부회장의 승부수 등을 집중 분석한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항공기는 지상무기(한화에어로스페이스)·함정(한화오션)·레이다·위성(한화시스템)으로 이어지는 방산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온 한화그룹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퍼즐이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진두지휘하는 방산·우주항공 확장 전략의 정점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가 놓인 이유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KAI 주식 장내매수 한도를 5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실제 취득 규모는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대량보유보고서에 명시한 보유목적은 '경영권 영향'이다. 한화시스템·미국 법인을 포함한 계열사 합산 현재 지분은 5.09%다.
김 부회장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절박감은 포트폴리오 구조에서 나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 부문 매출은 지난해 9조881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7%를 차지한다. 주력은 K9 자주포·천무 다연장로켓 등 지상무기다. 폴란드·루마니아·호주 등 대형 수출계약이 잇따르며 외형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성장의 지속성은 담보하기 어렵다. 지상무기는 납품 후 후속 수요가 제한적으로 수출 물량이 소진되면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업보고서에는 항공 부문이 존재하지만 완성기 개발·생산이 아닌 부품·엔진 공급에 머물러 있다. 엔진을 만들어도 항공기를 만들지 못하면 방산 항공 시장의 주도권은 쥘 수 없다. 그룹 전체를 통틀어도 항공기를 직접 설계하고 생산한 실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KAI는 한화그룹에 없는 FA-50 경공격기·수리온 헬기·KF-21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항공 포트폴리오 공백을 메울 경로는 KAI뿐인 이유다.
한화그룹이 처음부터 KAI 확보가 절박했던 것은 아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 초까지만 해도 풍산 방산 부문 인수를 추진했다. 탄약부터 발사체까지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뒤 다음 단계를 밟겠다는 구상이었다.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계획이 틀어졌고, 그 무게가 고스란히 KAI로 쏠린 것이다.
경쟁사 압박도 한화를 몰아붙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로템을 앞세워 방산을 확장하면서 우주항공·로봇 분야 연구개발 투자도 대폭 늘리고 있다. 현대차는 이미 연구개발 분야에서 우주에서 사용이 가능한 우주 로봇을 개발 중이다. KAI 인수전이 본격화할 경우 현대차그룹이 빠질 이유가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대한항공도 아시아나 합병 이후 항공 MRO 역량을 바탕으로 방산 확장을 모색 중이다. 지금 잡지 않으면 빼앗길 수 있다는 절박감이 업계 전반으로 작동하는 상황이다.
이미 물밑에서는 KAI를 인수하려는 한화와 이를 막으려는 연합군들이 대형 로펌과 손을 잡고 본격적인 경쟁 구도를 만들고 있다. 현대차, 대한항공 이외에도 포스코인터내셔널, LIG D&A 등이 KAI 인수를 못하더라도 한화한테는 넘겨줄 수 없다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다만 현실의 벽은 높다. KAI 최대주주는 지분 26.41%를 보유한 한국수출입은행이다. 국민연금(8.30%)과 피델리티(6.92%)도 5% 이상 주주로 올라 있다. 5000억원 한도를 모두 채워도 한화 계열 지분은 6%대에 그친다. 수은 지분을 넘어서는 건 정부의 KAI 민영화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그럼에도 한화가 지분 확보에 속도를 내는 건 민영화 논의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방산 수출을 국정 과제로 내세운 현 정부 기조 아래 KAI의 전략적 위상은 높아지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K-방산을 해외에 패키지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민간 기업이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도 내릴 수 있다. 또 KAI가 정권 교체에 따른 수장 교체로 부침이 잦고 KF-21 이후 차기 전투기 계획도 없는 등 조직 내 긴장감과 신규 사업에 대한 계획이 적은 것도 민영화의 이유로 꼽힌다.
실제 민영화가 진행될 경우 한화도 그룹의 역량을 총동원해 자금을 끌어모아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김 부회장 입장에서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KAI 인수를 통한 외형 확장이 필수다.
익명을 요청한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민영화가 공식 의제로 오른 상황은 아니지만, 유사시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선점하려면 지금부터 지분을 쌓아두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며 "한화의 지분 매입은 인수 선언이 아니라 자리 맡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KAI 인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정부가 지나가면 다시는 없을 수 있다"면서 "한화에어로의 수주 잔고가 줄어들기 전에 KAI 인수를 하지 않으면 또 다시 방산 암흑기가 올 경우 생존을 걱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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