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차장] "승계할 것이었으면 회사 보유 현금을 전부 배당받은 뒤 깡통 상장하지, 뭐 하러 현금을 그대로 두고 기업공개(IPO)를 하겠느냐."
지난해 8월, 명인제약 이행명 회장이 상장 전 언론사 인터뷰에서 '승계용 IPO'라는 시장의 의혹에 발끈하며 던진 일갈이다. 5600억원이 넘는 넉넉한 유보금과 8%대 무차입에 가까운 부채비율을 두고도 굳이 상장을 강행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던 시장을 향해, 이 회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 호기롭던 호언장담의 유효기간은 고작 7개월이었다. 상장 첫날 12만원을 돌파하며 기세를 올리던 주가가 공모가 밑인 5만 원 선까지 반토막이 났다. 주가가 떨어지자마자, 이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두 딸에게 총 96만 주의 지분을 넘겼다. 보호예수가 풀리고 주가가 바닥을 기는 '절세의 적기'를 놓치지 않은 치밀함이다. 이 회장의 공언을 믿고 공모주에 참여했던 소액주주들이 낙폭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동안, 오너 일가는 뒤에서 수십억 원의 증여세를 아꼈다며 미소를 지은 셈이다.
자본시장이 이번 증여에 더욱 분노하는 이유는 정부가 전방위로 추진 중인 'K-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의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최근 수년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상장사들에 자사주 소각,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주주가치 중심 경영'을 강조해왔다. 기업이 시장의 신뢰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한 만큼, 대주주 역시 기업가치 제고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명인제약이 보여준 행보는 K-밸류업에 매달리며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는 타기업과는 정반대다. 77세 노령의 이 회장에게는 여전히 잔여지분 43%가 남아있다. 향후 2차, 3차 추가 증여와 최종 상속이 마무리될 때까지 오너가 입장에서는 주가가 오르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다. 주가가 낮게 유지돼야 승계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적 모순 속에서 대주주가 주가 부양책을 쓸 리 만무하다. 오너의 이해관계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가 정반대로 꼬여버린 밸류업 역행의 교과서적인 사례다.
명인제약은 이미 과거 2022년에도 두 딸의 개인회사인 메디커뮤니케이션에 일감을 몰아주다 국세청으로부터 혹독한 세무조사를 받고 추징금을 물어낸 바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의 이익을 사유화해 자녀의 주머니를 채운다'는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비상장 시절의 거친 수법이, 상장 이후 자본시장의 주가 변동성을 이용한 '합법적 꼼수'로 진화했을 뿐이다.
상장은 기업이 시장으로부터 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고, 그 성과를 주주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약속의 과정이다. 상장 제도가 오너 일가의 승계 과정에서 활용되며 일반주주와의 이해상충 논란이 반복되는 한, 정부가 강조하는 밸류업 정책은 의미가 퇴색된다. "승계용이 아니다"라던 명인제약의 해명을 믿었던 주주들은 지금, 속절없이 무너진 주가창을 보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슬프게도 이행명 회장의 증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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