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업의 본질은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에 있다. 하지만 그간 국내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는 주총 시즌마다 기계적 찬성에 그치는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CEO의 직접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을 본격화한 배경이다. 이에 딜사이트는 주요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분석해 수탁자책임 이행 수준을 진단해본다.
[딜사이트 윤종학 기자]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올해 주주총회 반대율은 12.9%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 개정에 맞춰 내부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한 결과다. 특히 기업가치를 훼손한 임원의 선임에 집중적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21일 딜사이트가 트러스톤운용의 2025년 의결권 행사 내역(2025.04~2026.03)을 분석한 결과 전체 1421건 가운데 반대는 183건(12.9%), 불행사는 9건(0.6%)으로 집계됐다.
반대 의안 수는 전년 55건에서 183건으로 세 배 이상 급증했고 반대율도 5.8에서 12.9%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특히 이사 선임·해임 안건의 반대율만 따지면 6.1%에서 21.9%로 뛰었고 임원 보수 안건도 4.7%에서 15.2%로 올랐다.
이성원 트러스톤운용 SS운용부문 대표는 "가이드라인에 맞춰 의결권을 행사하는 만큼 의도적으로 반대표를 늘린 것은 아니다"며 "지난해 상법 개정 등 제도 변화가 많았고 이를 반영해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반대 사유의 중심축은 '재임 중 기업가치 훼손 이력'의 사후 책임 귀속이다. 트러스톤운용은 전영현 삼성전자 사내이사(현 대표이사 부회장)와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삼성SDI 대표이사 재직 시 공정거래위원회 일감몰아주기 조사 대상 기간과 재직이 겹쳤다는 이유다.
고려아연 안건에서는 최윤범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했다. 트러스톤운용은 "자사주 맞교환, 제3자배정 유상증자 추진, 해외 자회사 관련 지배구조 논란으로 주주권익 관점에서 반대"라고 공시에 직접 명시했다. 셀트리온 서정진 창업주의 이사 선임 반대도 계열사 간 사익편취 이력이 근거였다.
태광산업에서는 한 기업에 반대표를 10건 집중시켰다. 배당성향 1.8%를 이유로 재무제표 승인에 반대한 것을 시작으로, 이사 수 상한 설정 정관 변경, 이사·감사위원 선임 5건, 임원 보수 한도 안건까지 전방위에 걸쳐 반대했다. 이사회가 3186억원 규모 교환사채 발행에 찬성했다가 금융감독원의 정정명령과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으로 이어진 경위를 근거로 해당 이사회에서 찬성표를 행사한 이사들의 재선임을 개별적으로 거부했다.
정관 변경에서는 이사 임기를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꾸는 조항에 일관되게 반대 기조를 유지했다. 삼성화재·삼성카드·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해당된다. 임기를 범위로 규정하면 이사 개인별로 임기를 달리 설계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다는 논거다.
올해 처음 등장한 불행사 9건은 SK케미칼·LF·한국알콜·BYC 등의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다. 전년까지 불행사가 0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부터 3% 룰 실무 적용이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러스톤운용의 의결권 행사 체계는 수탁자책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성원 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자문사 권고와 내부 판단이 엇갈릴 경우 위원회를 소집해 위원별 개별 표결로 최종 결정한다. 트러스톤운용은 의결권 행사 전담 조직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이성원 대표는 "의결권 행사 공시와 주주 활동 이행 보고서 작성 등 관련 업무량이 급격히 늘었고 연기금의 의결권 위임 확대 흐름까지 감안하면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며 "조만간 조직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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