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개시일까지 불과 1시간 30분을 앞두고 마침내 성과급 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하며 총파업이 유보됐다. 이로써 잠정합의안은 오는 23~28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다만 이번 합의안은 사측이 기존 성과주의 철학을 포기하면서 이뤄진 결과라 향후 삼성전자의 성과보상 체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의 압박과 파업 불안으로 인해 사측이 크게 양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삼성전자의 내부 기업 문화와 분위기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노사는 20일 밤 10시44분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서 2026년 성과급 노사 잠정 합의에 대해 서명했다.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초기업노조)의 최승호 위원장은 "오늘 사후조정이 불성립된 이후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로 노사 교섭이 재개됐고, 총파업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에서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도 "오랜 시간 임금협상 타결을 기다려 준 임직원 여러분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이번 잠정합의가 상생의 노사 문화를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잠정합의안은 사실상 노조 측의 승리로 평가된다. 이번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는 그동안 사측이 반대한 성과급 제도화가 명시됐기 때문이다. 유효 기간을 10년으로 설정하긴 했으나 성과급 산정 방식뿐 아니라 지급 방식과 적용 기간까지 장기 제도화하면서 삼성전자 성과보상 체계의 철학이 깨졌다는 분석이다.
잠정합의안에는 성과급으로 OPI 1.5%와 특별경영성과급 10.5%를 합쳐 총 12%를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기존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 됐던 금액 상한도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특별경영성과급은 최소 영업이익 요건을 달성할 때만 지급된다. 실적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특별성과급이 발생하지 않는 구조다.
2026~2028년에는 DS부문 영업이익 200조원 달성 시 지급한다. 2029~2035년에는 영업이익 100조원 달성 시 지급하는 구조다. CL4(부장급) 직군의 경우 업적평가 결과에 따라 지급률을 차등 적용하되 기존 OPI 가감률 체계를 준용한다. 임금 부문에서는 베이스업(기본급 인상률) 4.1%, 성과 인상률 평균 2.1%로 합의했다. 성과 인상률은 커리어레벨(CL)과 고과에 따라 차등 적용된다.
그나마 사측이 협상에서 노조 측으로부터 가져온 것은 성과급을 세후 전액 자사주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지급 주식의 3분의 1은 즉시 매각 가능하다. 나머지 3분의 1은 1년, 또 다른 3분의 1은 2년간 각각 매각이 제한된다. 현금 일시 지급이 아니라 주식 보상 방식을 택하면서 임직원 보상과 회사 중장기 가치 상승을 연동시키려는 절충안으로 풀이된다.
논란이 됐던 성과급 배분 구조의 경우 총액의 60%는 DS부문 흑자사업부에 배분하고 나머지 40%는 DS 전체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공통조직 지급률은 메모리사업부 지급률의 70% 수준으로 하기로 했다. 당해 회계연도 적자 사업부에도 부문 재원을 활용해 산출된 공통 지급률의 60%를 지급하기로 했다. 다만 적용 시점은 2027년분부터다. 사실상 실적 기반 성과주의 원칙이 훼손됐다는 평가다.
적자 사업부까지 성과급을 배분키로 하면서 기존 평가·보상 체계 근간이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흑자를 낸 DX(디바이스경험) 부문 사업부보다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DS 일부 사업부가 더 많은 성과급을 가져가는 구조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발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번 잠정합의안에서는 DX 부문에 600만원 규모의 자사주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DX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상생협력 관련 내용도 합의안에 포함됐다. 무주택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 주택대부 제도를 도입한다. 자녀 출산 경조금은 첫째 100만원, 둘째 200만원, 셋째 이상 500만원으로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샐러리캡(연봉 상한선)도 CL4 개발·비개발 구분 없이 1억3000만원으로 올리고 CL3는 1억1000만원, CL2는 8000만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의안이 삼성전자의 성과급 제도와 근간을 크게 흔들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성과 있는 곳에 보상있다"는 철학에서 "어떤 기준으로 성과를 나누냐"로 초점이 이동했다. 현금이 아닌 자사주로 지급하는 부분은 사측이 얻어낸 성과지만 장기간 성과급 기준을 제도화하면서 부담을 끌어 안았다. 사실상 정부가 나서면서 파업을 막자는 분위기와 압박으로 인해 삼성도 기존 성과급 철학을 일부 양보하고 노조 측 요구를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삼성의 노사합의안으로 인해 향후 기업들의 성과급 제도도 크게 바뀔 전망이다.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이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나눠 먹기식 성과급 제도로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우수한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줄고 무임승차하는 직원들이 늘어날 우려도 크다. 특히 반도체 불황기에 접어들어 성과급 재원 자체가 줄어들면 우수 인재가 받게 될 보상은 턱없이 줄어 경쟁사로 인력이 유출될 가능성도 많다.
한편 삼성전자는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죄 드린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겸허한 자세로 보다 성숙하고 건설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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