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업의 본질은 타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에 있다. 하지만 그간 국내 운용사들의 의결권 행사는 주총 시즌마다 기계적 찬성에 그치는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CEO의 직접적인 관심을 촉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을 본격화한 배경이다. 이에 딜사이트는 주요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내역을 분석해 수탁자책임 이행 수준을 진단해본다.
[딜사이트 김광미 기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최근 1년간 삼성그룹 계열사와 고려아연과 DB하이텍 등 주요 기업 안건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시차임기제에 대해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며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행보를 보인 것으로 확인된다.
1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미래운용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의안 2027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찬성은 85.74%(1738건), 반대는 12.48%(253건), 중립행사는 0.25%(5건), 불행사는 1.38%(28건), 안건 미진행 0.15%(3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찬성 비중은 3.77%포인트 상승한 반면 반대 비중은 3.54%포인트 감소했다.
의결권 행사 기준으로 ▲수익자 및 주주 권익 보호 ▲영업활동 수익성 향상 ▲기업 내재가치 제고 ▲지배구조 및 재무구조 개선 ▲환경·사회적 책임 등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 최근 1년간 의결권 행사 내역을 보면 단순 찬반을 넘어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와 이사회 운영 방식, 보수 체계까지 세부적으로 판단한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
특히 올해는 개정 상법 영향으로 정관변경 안건이 급증했다. 미래운용의 정관변경 관련 의결권 행사 건수는 1년 전 184건에서 올해 556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전자주주총회 도입, 집중투표제, 배당 기준일 변경, 독립이사 명칭 변경, 이사의 충실의무 등 개정 상법 내용을 반영하는 안건이 대거 상정된 영향이다.
◆ 삼성 계열사 정관·보수안에 잇단 반대…"경영권 방어 수단 우려"
미래운용이 가장 적극적으로 의결권 반대가 집중된 곳은 삼성그룹 계열사였다. 삼성화재·삼성증권·삼성SDI·삼성전기·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운용은 삼성전자 정관변경 안건 가운데 '이사의 임기 조문 정비' 안건에 대해 보유 지분 0.6%를 반대 행사했다. 해당 안건은 이사의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로 변경하는 시차임기제 도입이 핵심이다. 최근 기업들은 상법 개정으로 집중투표제 도입이 의무화되자 이사 임기를 분산해 경영권 방어에 나서기 위한 정관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특정 사외이사의 임기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해당 안건을 상정했다.
미래운용은 "이사별로 상이한 임기 설정이 가능해질 경우 임기 구조를 자의적으로 설계할 여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임기 분산 구조가 고착화되면 특정 시점에 이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어려워지고, 기업 인수·합병(M&A) 등 경영권 변동 상황에서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다. 같은 이유로 삼성에스디에스 정관변경 안건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삼성SDI·삼성에피스홀딩스·삼성화재 등의 이사 보수한도 승인 안건에도 반대했다. 보수 한도 상향 필요성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 DB하이텍 적극 반대…경영권 분쟁 고려아연 안건에 의결권 행사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DB하이텍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미래운용은 DB하이텍 전체 안건 14건 중 8건에 반대했다.
특히 이상기 사내이사와 황철성·윤영목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재선임 안건에 모두 반대표를 행사했다. DB월드 구주 매입 및 유상증자 참여, DB월드의 DB메탈 흡수합병, 상우공장(FAB) 투자 목적의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EB) 발행, DB월드건설 흡수합병 등 주요 의사결정에 찬성했던 이사들이 이사회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사 재선임 안건을 단순 독립성 문제가 아니라 과거 의사결정 책임 관점에서 평가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서도 미래운용은 주요 안건마다 뚜렷한 입장을 드러냈다. 우선 최윤범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했다. 미래운용은 최 회장이 자사주 매입과 2조50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 결의에 찬성했던 점을 들어 주주권익 훼손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면 영풍 측 주주제안으로 올라온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안건에도 반대했다. 박병욱 후보자가 과거 영풍 사외이사를 지낸 이력이 있고, 현재 영풍·MBK파트너스 측 인사 2명이 이미 이사회에 진입해 있는 상황에서 추가 선임 시 이사회 독립성과 견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다. 경영진 측과 행동주의 주주 측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기보다, 이사회 독립성과 주주권익 관점에서 각각의 안건을 따로 판단한 셈이다.
미래운용의 의결권 행사는 수탁자 책임 활동 전담 조직인 스튜어드십팀이 맡고 있다. 이왕겸 책임투자전략센터장이 스튜어드십 책임자를 맡고 있으며, 최영주 팀장과 서연우 선임매니저가 실무를 담당한다. 중요 안건의 경우 수탁자책임위원회를 통해 별도 심의·의결 절차를 거친다. 미래운용 관계자는 "앞으로도 고객의 중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기관투자자로서의 선관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의사결정에 최선을 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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