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관훈 기자] 우리금융지주 편입 후 첫해를 넘긴 ABL생명보험이 고강도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곽희필 대표가 취임 이후 첫 정기 인사(2026년)를 통해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70년 넘게 이어온 직급 체계의 대변혁을 단행하면서다. 금융권에서는 동양생명보험과 합병을 염두에 둔 고강도 군살 빼기이자, ABL생명의 색채를 지우는 표준화 작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ABL생명은 최근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본사 지원 부서 인력을 대폭 축소하고, 이를 영업 현장(FC·GA 채널)으로 전진 배치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창립(1954년) 후 72년간 유지해온 임원 직급 체계의 폐지다.
ABL생명은 기존의 전무·이사·부장 직급을 전격 폐지하고, '사장–부사장–상무' 3단계로 단순화했다. 실무자급에서도 '부서장(부장)' 직책을 없애고 '팀장'으로 통일했다. 이는 이미 수평적 직급 체계(수석–책임)를 운영 중인 같은 그룹 내 계열사 동양생명과 인사·조직 체계를 맞추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합병 시 가장 큰 걸림돌이자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상이한 인사·직급 체계의 통합"이라며 "곽 대표가 이를 미리 동양생명 기준으로 단순화해 향후 물리적 결합 비용을 줄이고 통합 속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개편이 단순한 효율화를 넘어 '조기 합병'의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곽희필 대표는 과거 ING생명, 오렌지라이프, 신한라이프 통합 법인 출범을 모두 임원으로서 겪은 'PMI(Post-Merger Integration·인수 후 통합) 전문가'다.
특히 2021년 신한라이프 출범 당시 FC1사업그룹장(부사장)을 맡아 서로 다른 조직 문화를 가진 설계사 조직을 융합하고, 중복 점포를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의 최전선에 있었다. 당시에도 비효율 점포 정리와 인력 재배치 등 이른바 '악역'을 수행하며 통합 법인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목할 점은 당시 신한라이프 초대 사장으로서 곽 대표와 합병 실무를 지휘했던 인물이 현재 동양생명을 이끌고 있는 성대규 사장이라는 사실이다.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 내 두 보험사 수장이 과거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함께 경험했다는 점을 이번 인사 개편을 단순한 조직 정비로 보기 어려운 이유로 꼽고 있다.
동양생명 측에서도 통합 준비 작업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실제로 성대규 사장은 올해 1분기 중 동양·ABL생명 통합을 위한 '통합컨설팅 TF'를 발족하고, 하반기에는 인사(HR) 통합 TF까지 가동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공언한 '3년 내 통합'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성 사장의 임기(2년) 내 가시적 성과 압박이 맞물리며 통합 일정이 앞당겨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핵심은 '철저한 성과주의'와 '외부 수혈'이다. 지난해 말 ABL생명은 정종국(리스크), 이상윤(HR), 지성원(재무) 등 3명을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며 4인 부사장 체제를 구축했다. CFO로 영입된 지성원 부사장은 딜로이트안진 출신의 외부 인사로, 향후 PMI 과정에서 재무 건전성 관리와 합병 비율 산정 등 핵심 실무를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곽 대표는 조직 개편과 함께 오는 2027년까지 전속 설계사(FC) 조직을 4000명까지 늘리고, 업계 TOP 4 진입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기존 지역단 체계를 폐지하고 51개 지점으로 재편하는 등 현장 밀착형 지원 시스템을 가동했다. 다만 최근 수년간 ABL생명의 연간 설계사 순증 규모가 100명 안팎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매년 800명 이상을 늘려야 하는 목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합병을 앞두고 ABL생명의 향후 행보를 두고 업계 내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통합작업이 본격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조직 규모가 작고 자본 여력이 제한적인 ABL생명에 구조 효율화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우리금융그룹 차원에서는 보험 포트폴리오 효율화와 중복 비용 절감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곽 대표에게 주어진 미션은 ABL생명의 덩치를 단기간에 불려 동양생명과의 합병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무리한 리크루팅과 실적 압박은 결국 '철새 설계사' 양산과 불완전판매로 이어져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BL생명 측은 "동양생명과의 통합 등에 대해서는 현재 공식적으로 확정된 사항이 없다"면서 "최근 진행된 조직 개편과 직급 단순화는 경영 효율성과 의사결정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 시장 환경 변화에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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