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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생태계, 올라타되 갇히지 않으려면
이승현 라이너 AI에반젤리스트
2026.06.08 15:27:43
공급 푸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느냐가 협상의 본론
이승현 라이너 AI에반젤리스트

[이승현 라이너 AI에반젤리스트] 이번에도 젠슨 황의 방한에 업계가 들썩거렸다. 배경훈 부총리와 GPU 공급을 논의하며,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사업과 맞물려 연내 어렵다던 차세대 가속기 '베라루빈'의 확보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가 크다. 


최신 칩을 빠르게 받아 컴퓨트 병목을 풀고, 세계 최대 가속기 진영을 우리 메모리의 안정적 판로로 삼으며, 제조 현장의 로봇과 피지컬 AI를 함께 개발한다. 게다가 메모리와 로봇, 제조 데이터는 우리가 거꾸로 엔비디아를 묶는 자산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거는 '상호 락인'은 종속이 아니라 레버리지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엔비디아가 GPU를 거저 줄 리는 없다. 공급을 푸는 대가로 무엇을 요구하느냐가 협상의 본론이다. 그 반대급부는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우리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이거나, 자사 생태계로의 편입일 수 있다. 함정은 GPU 공급과 모델 협력이 한 묶음으로 추진될 때 더 깊어진다. 락인의 무게중심은 칩이 아니라 그 위의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코스모스(월드 모델)·옴니버스(디지털 트윈)·네모트론(개방형 모델)까지 협력이 커지면서, 우리는 AI 인프라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델 학습과 플랫폼 운영까지 엔비디아의 스택 위에서 돌리게 될 수 밖에 없다. 인프라에서 모델로, 모델에서 업무로 의존이 한 층씩 쌓일수록 락인은 깊어진다. 칩을 들였을 뿐인데 어느 순간 생태계 전체에 결박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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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전장은 이미 월드 모델로 옮겨가고 있다. 인터넷의 텍스트를 거의 다 읽어버린 거대언어모델(LLM)의 다음 무대는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시뮬레이션하는 월드 모델과 피지컬 AI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 승부를 가르는 자원은 실리콘이 아니라 데이터다. 인터넷에 사진과 문서는 넘쳐도 공장 라인과 용접 로봇, 도로 위 주행에서 나오는 데이터는 희소하다. 그 희소한 자원을 가장 많이 쥔 나라 중 하나가 제조·자동차·조선 강국 한국이다. 칩 경쟁에서 우리가 메모리 공급자였다면, 데이터로 겨루는 이 전장에서는 원천을 쥔 주체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원천을 쥐고도 결과물을 내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엔비디아의 월드 모델·디지털 트윈에 정작 그 제조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이 우리의 협상 카드이지만, 데이터가 물리적으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쟁점은 남는다. 우리 데이터로 사전학습이나 포스트트레이닝을 거친 모델의 가중치를 누가 소유하고 어디까지 활용하느냐, 오픈소스 모델이라 해도 라이선스가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연료를 내주면서 결과물의 소유권까지 흐릿하게 둔다면, 데이터 강국은 데이터 하청국으로 주저앉는다.


하드웨어에서도 같은 위험이 도사린다. 삼성·SK가 HBM을 납품만 한다면 우리는 AI 반도체 생태계에서 부품 공급자 자리에 머문다. HBF로 이어질 협력에서 단순 공급을 넘어 차세대 시스템 설계 단계부터 함께 들어가야, 비로소 부품 공급자에서 공동 설계자로 올라선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전선이 추론용 칩이다. 정부와 시장의 관심이 GPU 확보에만 쏠리면 퓨리오사·리벨리온 같은 국산 NPU의 수요 기반이 말라붙는다. 거대 모델을 새로 학습시키는 일만큼이나, 이미 학습된 모델을 기업 업무에 맞춰 빠르고 낮은 전력으로 실행하는 추론이 중요해지는 것이 에이전트 시대다. 에이전트가 개인 PC와 기업 클라우드의 데이터를 참고해 일을 처리할수록 저전력 추론 칩의 자리는 커진다. 당장의 수익성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공공 수요로라도 국산 NPU를 받쳐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답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주장해 온 연결된 자율성(Connected Autonomy)은 연결의 실익은 최대한 흡수하되 핵심 역량의 통제권은 자율로 지키는 투 트랙 전략이다. 한 트랙은 연결이다. 베라루빈을 빠르게 들여 컴퓨트 병목을 풀고, 코스모스로 피지컬 AI와 로봇·공장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옴니버스로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며, 네모트론으로 하이퍼클로바X 같은 자체 모델을 고도화한다. 가속과 혁신에 우리도 동참하는 일이다. 


다른 트랙은 자율이다. 제조 데이터의 통제권과, 그 데이터로 길러낸 모델 가중치의 소유권을 우리가 분명히 쥐어야 한다. HBM은 설계 단계부터 삼성·SK가 함께 들어가 고착성 있는 공동 자산으로 바꾸고, 국산 NPU는 공공 수요로 받치며, MCP 같은 에이전트 표준과 데이터 인터페이스 계층에는 우리 지분을 박아야 한다.


결국 관건은 정부와 기업들이 이번 만남에서 무엇을 얻고, 그 대가로 어떤 조건을 확보하느냐다. GPU를 빨리 받는 것만이 성과가 아니다. 제조 데이터의 주권, 우리가 길러낸 모델 가중치의 권리, 메모리의 설계 참여, 국산 추론 칩의 공공 수요까지 협상 테이블 위에 함께 올려야 한다. 받기만 하고 끝나는 거래가 아니라, 무엇을 끝내 우리 손에 쥘지를 설계하는 협상이어야 한다. 젠슨 황을 환영하되, 환영의 언어는 계약서가 아니라 전략이어야 한다. 연결로 가속하고 자율로 지킨다. 그것이 환영의 이면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답이다.


※ 외부 필자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승현 라이너 AI 에반젤리스트는 스타트업 창업가 출신의 AI 전문가로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겸임교수, 법무법인 린의 공공AX 고문을 겸하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인공지능플랫폼혁신국장으로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 공공 AI의 초석을 닦았으며, 기술과 정책의 가교 역할을 하는 현장형 전략가다. 최근 국가 운영체제(OS)를 AI 중심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제시한 'AI 국부론'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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