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성희 산업2부장] 지난 1일 자동차 업계의 시선은 일제히 울산으로 쏠렸다. 현대자동차 하청노조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 여부가 결정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산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는 또다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달 20일 1차 심판회의에 이어 두 번째 연기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시행 이후 완성차 업계 최초의 법적 판단이라는 무게감 탓인지, 판정을 내려야 할 지노위의 장고가 길어지고 있다.
단순한 눈치보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온 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사용자성 판단의 '첫 선'을 긋는 룰 메이커로서의 엄중함과 신중함이 작용한 결과다. 개정 노란봉투법이 닻을 올렸지만, 법이 실제로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원청의 책임 범위는 어디서 끝나는지 서술한 구체적인 판례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노위의 장고가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선례의 공백은 이미 현장의 혼선을 심화시키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건에서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했으나 노조는 구법 기준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한화오션 건에서 경남지노위는 판단 자체를 유보했다. 지노위가 고심 끝에 '제한적 인용'이라는 절충안을 택하더라도,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면 유사 사건마다 소송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피하기 어렵다.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는 와중에 하청노조는 결과와 무관하게 오는 7월 1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완성차 업계 협력사 노조들도 울산의 결정을 예의주시하며 다음 행보를 가늠하는 중이다. 이번 지노위 판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사측이 중앙노동위원회 재심과 행정소송으로 맞서며 대법원까지 이르는 장기전에 돌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노사 갈등이나 법리 다툼으로 봐서는 안 된다. 기업의 재무와 경영 전략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은 재무적 부담이다. 지금까지 협력업체의 원가 항목으로 분리되어 있던 하청 인건비 협상이 원청의 비용 구조 안으로 직접 편입되는 경로가 열리게 된다. 이는 당장 연결재무제표상 전면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기업의 가치를 갉아먹는 대표적인 '우발채무' 성격의 리스크로 재편됨을 뜻한다. 현대차의 밸류에이션을 뒤흔들 변수가 수면 위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 하청이 원청의 직접 교섭 대상이 되는 순간, 기업의 기존 고용 전략과 외주화 체제 역시 원점에서 전면 재설계해야만 한다.
결국 지노위의 거듭된 연기는 노란봉투법이 완성차 업계에 던진 불확실성의 크기를 고스란히 방증한다. 확실한 점은 지노위의 판정이 '싸움의 끝'이 아니라, 거대한 법리 공방과 패러다임 전환의 '서막'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 하청 리스크를 상수로 받아들이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근본적인 비용 구조 다변화와 고용 전략 수정에 착수해야 할 때다.
현대차는 국내에서 가장 거대하고 복잡한 사내하청 및 부품 공급망을 가진 기업이다. 만약 현대차에 대해 하청 노동자들의 근로 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사용자'라는 판정이 내려지면 다른 완성차 업체는 물론 조선·전자·철강 등 사내하도급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 제조업 전반으로 도미노처럼 교섭 요구가 확산될 것이다.
개정 노조법상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라는 모호한 법령 해석을 현대차에 어떤 '잣대'로 적용하느냐가 향후 수많은 하청 교섭 분쟁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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