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2조원대 영업이익으로 흑자 전환했지만, 정작 SK이노베이션이 자체적으로 쥔 현금은 2조원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 상환이 시작되는 3조원대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도시가스 자회사가 갚지 못하면 결국 SK이노베이션이 떠안아야 하는데, 자체 현금으로는 감당이 빠듯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은 2조1622억원이다. 다만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관련 이익과 래깅효과가 실적을 끌어올린 것으로, 본업 경쟁력이 개선됐다기보다 중동 분쟁이라는 일시적 변수가 작용한 결과다.
화려한 실적과 달리 곳간은 두텁지 않다.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은 14조원에 달하지만, 이는 SK온·SK에너지·도시가스 자회사 등 그룹 전체 현금을 합산한 수치다. RCPS를 발행한 주체는 이엔에스시티가스와 이엔에스시티가스부산이지만, 이들이 자체적으로 갚지 못하면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이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 정작 SK이노베이션 단독 법인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현금(별도 기준)은 2조2602억원, 단기금융상품을 더해도 2조2960억원에 그친다.
실제로 SK이노베이션의 자체 현금은 빠르게 줄고 있다. 별도 기준 현금성자산은 지난해 말 3조3376억원에서 1분기 말 2조2602억원으로, 석 달 만에 1조원 넘게 감소했다.
현금이 줄어든 자리에는 도시가스 자회사와 얽힌 빚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은 RCPS를 발행한 도시가스 지주사들로부터 그 자금을 다시 차입해 써 왔는데, 이 차입금이 같은 기간 큰 폭으로 줄었다. 별도 재무제표상 이엔에스시티가스로부터의 차입금 잔액은 지난해 말 2조4000억원에서 1분기 말 1조1422억원으로, 이엔에스시티가스부산 차입금은 7350억원에서 956억원으로 축소됐다. 이 두 숫자(2조4000억원·7350억원)는 KKR이 보유한 RCPS 발행액과 일치한다. RCPS로 도시가스사에 들어온 자금이 SK이노베이션으로 흘러든 뒤, 그 빚을 갚는 흐름과 현금 감소가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그 RCPS다. 앞서 본 차입금이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사이의 거래라면, RCPS는 자회사가 외부 투자자인 KKR에 갚아야 할 별개의 빚이다. 발행사인 이엔에스시티가스가 KKR에 상환해야 할 원금은 오는 11월 상환 개시를 앞두고 2조4000억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24년 10월 재발행한 RCPS는 KKR에 연 9.9%의 내부수익률(IRR)을 보장하는데, 2년 1개월간의 이자 약 4800억원을 더하면 2조8800억원에 이른다. 연 3.99% 우선배당률에 따른 배당금까지 포함하면 한꺼번에 3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이 필요하다. 발행사가 이를 감당하지 못하면 결국 SK이노베이션이 메워야 하지만, 자체 현금 2조2960억원으로는 빠듯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현금 상환보다 도시가스 매각 쪽에 무게를 둔다. RCPS 상환 방법은 현금 또는 자산인데, 자산 상환은 곧 도시가스 자회사 매각을 의미한다. 상환하지 못하면 KKR은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고, 6개 도시가스사를 거느린 지주사 이엔에스시티가스 지분 전량을 100원에 사들이는 콜옵션도 쥐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이엔에스시티가스 지분 전부에는 KKR의 1순위 질권이 설정돼 있다.
매각 관측에는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도 깔려 있다. 도시가스 6개사는 자산총계 합산 2조5692억원, 지난해 합산 매출 3조8658억원·순이익 3423억원으로 안정적 현금을 내는 알짜다. 다만 SK이노베이션 E&S 안에서 이익 기여도는 크지 않고 내수 기반이라 성장성도 제한적이다. SK그룹이 LNG·발전에 무게를 싣고 KKR과 1조8000억원 규모 신재생에너지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도시가스도 RCPS를 매개로 KKR 쪽으로 정리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7350억원 규모의 이엔에스시티가스부산 RCPS도 같은 수순으로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이지만 성장이 막힌 도시가스를, 빚을 떠안으며 끌어안을 이유가 크지 않다"며 "조단위 현금을 빼느니 도시가스를 정리하는 것이 현실적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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