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송한석 기자] SK그룹과 두산그룹의 SK실트론 매각 협상이 가치 평가를 두고 양측의 견해 차가 심해지면서 예상보다 더 장기화 되고 있다. 당초 두산그룹은 지난해 말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인수금융 조달과 자문사 선임 등을 빠르게 마무리하며 연초 계약 체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본계약 체결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 개선에 따른 전략자산 재평가를 주된 이유로 꼽고 있는 가운데 두산과 SK가 바라보는 업황 및 실적 흐름에 대한 시각 차이가 협상 장기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SK실트론 매각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12월 두산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다만 현재까지 최종 주식매매계약(SPA)은 체결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SK그룹 내부에서 SK실트론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AI 서버 증설과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 확대가 이어지면서 반도체 핵심 소재인 실리콘 웨이퍼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SK하이닉스를 보유한 SK그룹 입장에서는 웨이퍼 자산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SK실트론은 글로벌 실리콘 웨이퍼 시장 주요 업체 중 하나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와 옴디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SK실트론의 시장 점유율은 12% 수준으로 신에츠화학(27%), 섬코(24%), 글로벌웨이퍼스(18%), 실트로닉(14%)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웨이퍼 시장은 상위 5개 업체가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는 과점 구조로 평가된다.
최근 글로벌 AI 투자 확대 기대감으로 해외 웨이퍼 업체들의 기업가치 역시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일본의 섬코와 신에츠화학 등 주요 웨이퍼 업체 주가도 반도체 업황 개선 기대를 반영하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두산은 반도체 사업 확대 차원에서 인수 필요성은 크지만 최근 실적 흐름과 SiC 사업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가치평가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SK실트론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는 2022년 9578억원에서 2023년 6755억원, 2024년 6398억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2025년에는 4593억원까지 줄었다. 올해 1분기 EBITDA 역시 720억원에 그치면서 전년 동기 대비 31.7% 줄었다. 단순 연 환산 기준 연간 EBITDA는 3000억원 안팎 수준으로 추산된다.
현재 협상 대상은 SK㈜ 보유 지분 51%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지분 19.6%를 합한 70.6%다. 시장에서는 SK실트론의 기업가치(EV)가 5조원 이상 수준에서 논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실트론의 2024년 말 순차입금 2조2068억원을 감안하면 EV 5조원 기준 주식가치는 2조7932억원이다. 이에 따라 현재 매각 협상 대상인 SK㈜ 측 지분 70.6%의 단순 지분가치는 약 1조9720억원으로 추산된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실질 거래 규모가 2조원 중반대까지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어떤 EBITDA를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산정하느냐다. 2024년 기준 SK실트론의 EV/EBITDA는 약 7.8배 수준이다. 글로벌 웨이퍼 업체의 EV/EBITDA 배수와 비교하면 크게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다. 그러나 지난해 EBITDA 4593억원을 적용할 경우 동일한 EV 5조원은 약 10.9배 수준으로 상승한다. 최근 실적을 기준으로 보면 글로벌 동종업체 대비 높은 가치평가가 이뤄지는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현재 실적 둔화만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실리콘 웨이퍼 업종 특성상 반도체 업황 회복이 통상 6개월~1년가량 시차를 두고 실적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메모리 업황 개선 흐름이 이어질 경우 향후 실적 반등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두산그룹이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배경으로는 SiC(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사업 부진도 꼽힌다. SK실트론은 2020년 미국 듀폰의 SiC 웨이퍼 사업을 약 4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며 전기차용 전력반도체 시장 확대에 베팅했다. 그러나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경쟁 심화 영향으로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실제 SK실트론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SiC 사업과 관련해 총 4141억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이 가운데 영업권 손상 규모는 3344억원이다. 회사의 전체 순차입금 역시 2024년 2조2068억원에서 2025년 2조4334억원, 올해 1분기 2조6242억원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결국 SK그룹은 AI와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따른 전략적 가치에, 두산그룹은 최근 실적 둔화와 SiC 사업 리스크를 각각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해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29.4% 지분 처리 문제도 남아 있다. 현재 협상은 SK㈜ 측 70.6% 지분 매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최 회장 지분 처리 방안도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두산 입장에서는 향후 지배구조 단순화와 재무적 유연성 확보를 위해 잔여 지분 정리가 필요할 수 있어서다.
특히 최 회장 지분은 경영권 지분이 아닌 소수지분이라는 점에서 SK㈜ 지분과 동일한 가격을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일반적으로 경영권 지분에는 프리미엄이 붙는 반면 소수지분에는 할인 요인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최 회장 지분에 별도의 프리미엄이 적용된다면 과거 사익편취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있다. 앞서 검찰은 SK실트론 지분 취득 과정에서 제기됐던 사익편취 및 배임 의혹에 대해 최 회장과 SK㈜에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법 리스크는 상당 부분 해소됐지만 오히려 이후 최 회장 지분의 처리 방식과 가격 산정 문제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이혼소송 관련 재산분할 부담이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으로 다시 불확실해지면서 SK그룹의 매각 필요성도 이전보다 낮아진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앞서 2024년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측에 위자료 20억원, 재산분할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만 이후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환송하면서 위자료만 확정되고 재산분할 규모에 대한 최종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당시 거액의 재산분할 부담이 거론되며 자금 마련을 위해 SK실트론 매각 필요성이 부각됐지만 현재는 SK그룹 입장에서 낮은 가격에 서둘러 매각을 마무리할 유인이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SK그룹이 지난해부터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을 통해 재무부담을 낮추고 있는 상황이라 SK실트론 매각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면 SK그룹의 차입금 감축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에 SK그룹에서도 실트론 매각을 아예 하지 않기에는 재무 부담이 아직 있는 상황이라 몸값을 올리기 위한 움직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SK그룹 관계자는 "두산과 협상을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혔다. 두산그룹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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