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권재윤 기자] 얼마 전 여의도의 한 흡연 부스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부스 벽면에는 필립모리스가 조성했다는 안내와 함께 '담배연기 없는 미래'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바로 위로 굴뚝처럼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천천히 퍼져나오고 있었다. 공기 속에 잔뜩 배어든 냄새와 그 문구의 대비가 묘한 장면을 만들었다.
필립모리스는 2016년부터 이 슬로건을 공식적으로 내세워왔다. 일반 담배 판매를 점차 줄이고, 궐련형 전자담배를 포함한 비연소 제품으로 완전히 전환하겠다는 목표다. 2008년부터 비연소 제품 연구개발에 착수해 2014년 아이코스를 출시했고, 2023년까지 총 17조원을 투자했다. 전 세계적으로 흡연 인구가 줄고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기존 시장을 대신할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필립모리스는 한 세기 넘게 세계 담배 산업의 '제왕'이었다. 지난해 판매한 담배만 6170억 개비에 달한다. 대표 브랜드 말보로는 1970년대부터 글로벌 판매량 1위를 지켜온 '메가 브랜드'다. 그런 회사가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말하니, 마치 맥도날드가 '햄버거 없는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모순적으로 들린다.
물론 변화의 명분은 있다. 전자담배가 '덜 해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자담배는 담뱃잎을 직접 태우지 않고 300~350℃로 가열해 니코틴 증기를 발생시킨다. 회사 측은 이 과정에서 타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전자담배도 엄연한 담배다. 니코틴이 함유되어 있어 중독성을 유발하며, 사용량 조절이 어려워 오히려 중독을 심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같은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보고도 있어 안전성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필립모리스가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말한다면 아이코스의 증기 역시 그 범주에서 예외일 수 없다.
국제사회도 전자담배를 완전히 '무해한 제품'으로 보지 않는다. 일부 국가는 세금 부과와 규제를 강화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동일하게 흡연구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정말 '덜 해롭고 연기가 없다'면 굳이 흡연구역에 가둬둘 이유가 있을까.
'담배연기 없는 미래'라는 슬로건은 사회적 책임을 내세운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분명한 마케팅 전략이 있다. 기존 일반 담배를 '구식이자 해로운 제품'으로 규정하고, 전자담배를 '덜 해로운 대안'으로 자리매김시킨다. 시장 구도를 새로 짜고 신제품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드는 셈이다. 이렇게 형성된 프레임 속에서 전자담배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덧입고 빠르게 성장한다.
지난 2월 열린 아이코스 신제품 간담회에서 윤희경 필립모리스코리아 대표는 연소 담배의 해로움을 거듭 강조하며 아이코스가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담배를 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배를 끊는 것이 최선이라는 메시지는 분명했지만 듣는 이로서는 '끊을 수 없다면 아이코스를 선택하라'는 권유처럼도 들렸다.
결국 '담배연기 없는 미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설이다. 연기를 줄이겠다는 약속 속에 새로운 연기의 시장이 열리고, 해로움을 줄인다는 주장 속에 또 다른 중독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담배 회사가 그리는 미래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흡연자와 사회 전체의 몫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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