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우찬 차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해리 마코위츠 전 뉴욕시립대 교수는 분산투자 이론의 창시자다. 계란을 바구니 한 곳에 담지 말라는 분산투자 원칙은 포트폴리오 이론으로 불린다. 자산을 나눠 투자하면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사업다각화, 리밸런싱과 일맥상통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부문 국내사업본부장은 김정은, 해외사업담당 임원은 푸틴이라는 얘기가 있다. 두 사람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회사다." 안병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은 지난 4월 미래비전 설명회에서 이같은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한화그룹 시총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힘입어 국내 기업집단 중 6번째로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방산기업은 평화보다 전쟁, 안정보다 불안을 먹고 자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이란 타격 등 어수선한 국제 정세는 방산 기업에겐 기회다.
K-푸드, K-뷰티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삼양식품이 시총 10조원 시대를 맞은 게 대표적이다. 불닭면 시리즈가 해외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한국의 올해 1~4월 화장품 수출액은 미국을 처음 넘어섰다. 뷰티 원조 프랑스를 넘보고 있다고 한다. 가성비와 품질이 맞물린 결과다. 글로벌에 깊숙이 파고드는 푸드와 뷰티산업은 문화 관점에서 확장성이 주목되는 분야다.
뜨는 산업 이면에 고전하는 분야도 있다. 지방 산업도시인 여수와 대산에는 먹구름이 끼어있다. 해당 지역 산단의 LG화학, 롯데케미칼을 비롯해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이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그동안의 불황과 다른 것은 중국발 과잉공급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생산하는 만큼 석유화학산업을 포기하기 어렵다. 뼈를 깎는 산업재편이 요구된다.
배터리 기업은 방전 상태다.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은 올해 나란히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지난 2021년 LG와 SK가 배터리 특허를 두고 서로 물어뜯었던 때가 엊그제였다. 지금은 서로 싸울 여력조차 없다. 생존이 최우선 과제다. 전기차 캐즘을 버티는데 혈안이다. 배터리 산업도 석유화학처럼 중국이 득세하며 위기의 터널이 깊다.
포트폴리오 이론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적용될 것이다. 기업이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조정하는 것처럼 국가 관점에서 보면 국가대표급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요구된다. 개별 기업을 넘어서 중국을 위시한 국가와 겨뤄야 하는 시대다. 잘하고 커가는 산업은 집중 육성하고, 당장은 위기를 맞고 있지만 전략상 필요한 곳은 적극 지원해야 한다. 방산 수출의 콘트롤타워를 세우고 K-컬쳐를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전자를 위해 새 정부가 공약한 정책일 것이다. 석유화학특별법 제정은 후자 쪽이다.
구윤철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의 첫 일성이 주목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집단에서 사업다각화, 리밸런싱과 맞닿아 있는 포트폴리오 이론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으로 치면 산업 육성과 지원 정책이다.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대한민국호(號)의 위험 구간을 헤쳐나갈 수 있는 산업 포트폴리오 재구성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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