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슬이 기자] 법무법인 태평양이 지난해 인수합병(M&A) 법률자문 시장에서 전년대비 두 배가 넘는 실적 성장을 기록했지만 여전히 김앤장·광장·세종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며 4위에 머물렀다. 전통적인 강세 분야인 소송에 비해 기업 M&A 자문 시장에서의 존재감은 여전히 밀리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인적 쇄신과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공격적으로 보폭을 넓히는 경쟁 로펌들과 달리 소수 시니어 파트너들이 영업권을 쥐고 있는 지배구조 한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딜사이트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태평양은 지난해 M&A 법률자문 부문에서 전년(10조3211억) 대비 약 13조원 이상 증가한 23조6374억원의 실적을 거두며 4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거래 건수 역시 68개에서 86개로 증가했으며 순위도 한 단계 상승했다. 해당 실적은 딜 클로징(잔금납입)를 기준으로 자문사가 2곳 이상일 경우 거래액을 자문사 수로 나눠 반영했다.
태평양은 지난해 ▲SKC의 실리콘 음극재 생산 법인 얼티머스 매각(1조289억원) ▲텐센트뮤직의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인수(2433억원) ▲HD현대중공업의 HD현대미포의 합병(1997억원) 등 거래에 자문사로 이름을 올리며 실적을 쌓았다. 특히 미국 로펌인 Munger, Tolles & Olson와 함께 매각 측 자문을 맡은 인텔 낸드 사업부 거래가 5년 만에 종결되면서 5조5602억원(거래 금액 11조1205억원)의 실적을 거둔 영향이 크다.
거래 건수를 늘리며 실적 총액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과적으로 3위인 법무법인 세종(25조3715억)과의 격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약 1조7000억 원이라는 어찌보면 거래실적 측면에선 '한 끗 차이'로 순위가 갈린 셈이다. 특히 딜사이트가 리그테이블을 집계하기 시작한 2022년 이후 태평양은 줄곧 김앤장·광장·세종이라는 상위권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2022년 5위, 2023년 4위, 2024년 5위를 거쳐 올해 다시 4위로 올라섰지만 매년 법무법인 율촌과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태평양이 3위권을 뚫지 못하는 배경으로 클라이언트 영업 한계를 꼽는다. 태평양은 지난 2020년 20년 만에 강남 테헤란로를 떠나 종각 인근 센트로폴리스 빌딩으로 이전하며 4대문 안으로 복귀했다. 과거의 상징적인 위상을 되찾겠고 대관 및 소송 영업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작 M&A 시장의 주역인 기업과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을 상대로 한 공격적인 영업망 확대는 정체돼 있다는 지적을 얻는다. 특히 강남을 떠나 종로로 입성한 이후 오히려 기업 클라이언트들 사이에서의 존재감이 옅어지며 신규 영업 확보에 난항하고 있다는 평가다.
태평양의 영업력이 예전만 못한 근본 원인으로 소수 시니어 파트너들이 영업권을 독점하는 이른바 '올드보이' 중심의 구조가 지적된다. 공격적인 인재 영입과 파격적인 세대교체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온 광장이나 세종과 달리 태평양은 소위 고인물 파트너들이 주요 고객 네트워크를 쥐고 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 설명이다. 더욱이 다른 하우스들에 비해 중견 변호사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지 않고, 최근에 뽑은 저연차들이 많아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실제 M&A 현장에서 기업 고객을 쥐고 딜을 주도할 만한 '스타 변호사'의 계보가 끊겼고 이는 곧 대형 딜 수임 경쟁에서의 열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IB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태평양은 M&A 법률자문 하면 떠오르는 대표 선수가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태평양이 전통적으로 강점을 보여온 소송 분야의 위상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태평양은 최근 정부가 13년 전 해외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소송에서 전부 승소를 끌어낸 주역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국제송무가 M&A 자문 영역으로까지는 충분히 전이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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