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동호 차장]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의 야심작 디딤펀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한 달여가 지났다. 디딤펀드 출시는 서 협회장의 후보 시절 공약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수익률 개선을 위한 상품이다. 직장인들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탄생했다.
서 협회장의 일성(一聲)에 국내 자산운용사 25곳이 즉각 동참했다. 이들은 각자 1개씩 디딤펀드 상품을 출시했다. 10곳의 운용사는 기존에 있던 펀드 상품을 리뉴얼해 디딤펀드로 출시했고, 나머지 15곳은 신규 상품을 내놨다.
운용사들은 상품 출시와 함께 2주 동안 금융투자협회를 찾아 릴레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각자의 상품을 소개했다. 심지어 간담회를 이어가는 도중인 지난 16일에는 서 협회장과 운용사 대표들이 모두 모여 디딤펀드 출범식을 가졌다.
하지만 디딤펀드의 초반 성적은 너무나 초라하기만 하다. 상품 출시 한 달이 지났지만 수탁고가 1억원도 채 되지 않는 곳들이 수두룩하다. 무관심 그 자체다.
안티도 팬이라는데, 디딤펀드를 욕하는 이도 거의 없다.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혹은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서 협회장은 이런 사태를 어느 정도 예감한 듯하다. 그는 이달 가졌던 디딤펀드 출범식에서 '디딤펀드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스테디셀러'라고 말했다. 단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야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디딤펀드가 퇴직연금의 근간이 되는 상품이라 강조했다.
하지만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상품이 퇴직연금의 근간이 될 수는 없다. 선택받지 못하면 결국 사라질 뿐이다.
디딤펀드가 기존 상품과 차별성이나, 특별한 경쟁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상당수 운용사는 기존에 있던 펀드를 조금 뜯어고쳐 디딤펀드로 이름을 바꿔 출시했다.
또한 안전자산과 위험자산 편입 비중을 고정해 놓은 디딤펀드가 얼마나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여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퇴직연금의 경우엔 이미 필수적으로 30% 이상 안전자산 비중을 유지해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아직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에 포함되지 못했으며, 판매 채널도 증권사로 한정적이다. 상품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만 할 과제가 너무도 많다.
자본시장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과연 이런 문제들을 몰랐을까. 최근 한 운용사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많은 의문점이 풀렸다.
그들은 억지춘향이었다. 서 협회장의 임기 중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디딤펀드는 빨리 나와야만 했던 것. 서 협회장의 치적쌓기에 수많은 운용사들이 동원된 셈이다.
이제와 다시 보니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출범식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누군가의 '스테디셀러'가, 다른 누군가에겐 '애물단지'일지도 모르겠다.
디딤펀드가 스테디셀러가 되기 위해선 상품 구조설계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다양한 판매 채널 확보, 연금투자자 인식 개선 등이 우선돼야 한다. 자산운용업계가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여 보다 많은 직장인들의 노후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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