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슬이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위장계열사 허위 보고 의무 위반 혐의로 김준기 창업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이번 사법 리스크가 역설적으로 경영 일선에서 자의반 타의반 물러나게 된 아들 김남호 명예회장의 복귀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동흥산과 빌텍이 특수관계인으로 편입되며 김준기 회장 측 우호 지분이 늘었으나 총수의 법적 책임론이 불거진 상황이라 측근에 대한 인적 쇄신의 요구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DB그룹은 지난달 9일 삼동흥산과 빌텍을 특수관계자로 추가하며 이들이 보유한 주요 계열사 지분을 공시했다. 삼동흥산은 DB Inc.와 DB하이텍 지분을 각각 2.21%, 2.17% 보유 중이며 빌텍은 1.49%, 1.35%를 확보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들 회사를 김 창업회장의 사익 목적 거점으로 활용된 위장계열사로 판단함에 따라 해당 지분은 사실상 창업회장의 숨은 우호 지분으로 볼 수 있게 됐다.
DB그룹의 지배 구조는 크게 금융 계열사와 제조업 계열사로 나뉜다.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DB Inc.가 DB하이텍을 통해 DB기술투자, DB월드 등을 지배하고 있다. 금융 계열사의 최상위 회사는 DB손해보험으로 DB생명보험·DB금융투자·DB캐피탈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어 DB손해보험을 가지면 모든 금융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DB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DB Inc.와 DB손해보험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김남호 명예회장은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실질적인 지배력 측면에서는 아버지 김준기 회장에 밀리는 형국이다. DB Inc.의 경우 김준기 회장(15.91%)과 장녀 김주원 부회장(9.87%)의 지분에 이번에 삼동흥산·빌텍이 보유한 지분 총 3.7%를 더하면 김남호 명예회장(16.83%)의 지분율을 앞선다. 단순 지분 합산이 곧 지배력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김준기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DB손해보험 역시 김준기 회장(6.07%)과 김주원 부회장(3.21%)의 합산 지분이 김남호 명예회장(9.19%)을 앞선다.
DB Inc.는 지난해 5월 7일부터 8월 12일까지 장내에서 DB손해보험 지분 60만주를 매입했다. 지분율로 보면 0.85% 수준이었지만, 비슷한 시기 DB하이텍 역시 DB손해보험 주식 2만4000주를 장내 매수해 경영권 강화를 도왔다. 그간 DB그룹은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때문에 사실상 제조업 계열 지주사 역할을 하는 DB Inc.를 통한 금융 계열사 지분 취득을 꺼려왔는데 최근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성이 불거진 이후 이전과 달리 변화한 모습이다.
공정거래법상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국내 자회사 지분가치가 자산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50% 이상이 되면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한다. 그런데 최근 메모리 반도체 품귀현상이 불거지면서 DB하이텍의 주가가 상승하자 DB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경우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DB Inc.는 자신들이 보유한 DB손해보험 지분을 모두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제조 계열사를 동원해 금융 계열사 지분을 직접 취득할 실익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B손해보험 지분을 늘리는 까닭은 김남호 명예회장의 지배력을 최근 복귀한 김준기 창업회장이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이가 나빠지기 전에 물려준 지분 때문에 DB손보 등 금융계열사 경영권을 뺏기게 생겼으니 이제 다시 견제할 지분을 다시 사모으고 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김남호 명예회장은 사실상 현재 그룹 내 실질 권한이 없는 상태다. 2024년 6월 김남호 명예회장이 내려놓은 회장직은 김 창업회장의 최측근인 이수광 전 DB손해보험 부회장이 맡고 있으며 그룹 내 핵심 요직들 역시 창업회장 직속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창업회장이 아들을 경영권에서 배제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이어져 온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공정위의 검찰 고발이 김남호 명예회장의 귀환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 이사진의 지배구조 관리 능력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그간 그룹 요직을 차지해온 김준기 창업회장 측근 경영진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어서다. 결국 다가올 3월 정기 주주총회는 김남호 명예회장에게 결정적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DB손해보험을 상대로 주주제안에 나서는 등 외부 공세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그룹으로서는 인적 쇄신이 반드시 필요하고, 김남호 명예회장은 이번에도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그룹 내 입지를 회복할 마지막 타이밍을 놓칠 거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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