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차장] 정부와 한국거래소의 중복상장 경계 지조가 뚜렷해지면서 올해 역시 대기업 자회사 상장은 사실상 길이 막힌 분위기다. 제도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중복상장'에 대한 경계심이 정책 기조로 굳어지면서 국내 기업공개(IPO) 시장은 스스로 문을 좁히는 모습이다.
최근 에식스솔루션즈 사례는 그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초 유가증권시장본부 내부에서는 승인 가능성도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상장위원회가 열리기 전, 이재명 대통령의 "L자 들어간 주식은 사지 말라"는 발언이 나오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다음 날 LS그룹이 상장 철회를 발표하자, 시장에서는 이를 정책 신호와 연결 지어 해석했다. 직접적 인과관계 여부와 별개로, 2026년 자본시장에서도 VIP의 한마디에 조단위 기업의 계획이 멈춰 서는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중복상장 논란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지주사 가치에 자회사 가치가 이미 반영돼 있는데, 자회사를 따로 상장하면 모회사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더블카운팅'으로 불리며 코스피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그러나 에식스솔루션즈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지 의문이 남는다. 해당 회사는 M&A로 인수한 해외법인이자 증손자회사일 뿐이다. 상위 지주사에 미치는 이익 기여도도 미미하다. 모회사 주가에 자회사 가치가 실질적으로 얼마나 반영돼 있는지부터 따진다면, 중복상장의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명확한 기준 없이 '대기업 자회사 상장은 안 된다'는 정서적 합의만 남은 것처럼 보인다.
자금조달 니즈를 해소하지 못한 일부 기업은 해외 상장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은 리쇼어링을 외치며 글로벌 기업의 생산과 자본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반면, 우리는 명확한 기준 없이 자회사의 국내 상장을 제동 걸고, 기업을 해외증시로 등 떠미는 형국이다.
이 가운데 연초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눈에 띈다. 이를 만들어낸 보스턴다이내믹스 역시 같은 이슈에 부딪힌다. 향후 대규모 연구개발과 사업 확장을 위해는 상장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와서다.
현재의 잣대로 볼 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국내 IPO는 어려울 것 같다. M&A로 인수한 해외법인이지만, 이 회사의 지분은 현대차그룹이 나눠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는 미국 투자형 지주사 HMG글로벌로 56.5%를 보유한다. HMG글로벌의 주주는 현대자동차 49.5%, 기아 30.5%, 현대모비스 20%다. 이와 별도로 정의선 회장이 22.6%, 현대글로비스가 11.25%를 보유하고 있다. 구조만 보면 전형적인 중복상장 프레임에 넣을 수 있다. 미국 증시 상장을 택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미국 증시에 상장하겠다고 밝힌다면, 금융당국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까. 이제 시가총액 100조원도 넘겨버린 현대차에 주주가치 보호와 '더블카운팅'을 말하며 자회사 상장을 막으라고 할까. 그때도 "H자 들어간 주식은 사지 말라"고 말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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