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민승기 차장]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국가경제 지표도 장밋빛으로 물들고 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대기업들을 떠받치는 벤더(Vendor)사들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두워 보인다.
대기업들의 성장이 가팔라질수록,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협력사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어서다.
가장 큰 문제는 대기업의 성과 공유 체계가 철저히 일방통행이라는 점이다. 원청업체가 사상 최대 이익을 낼 때도 협력사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상생의 열매'가 아니라 '단가 인하 압박'인 경우가 허다하다. 대기업은 효율 경영이라는 이름 아래 협력사의 원가 구조를 낱낱이 파악하고, 마른 수건 쥐어짜듯 수익률을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의 '초격차'를 위해 협력사들은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협력사들은 글로벌 원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동남아 현지 임금이 무섭게 치솟으면서 '저임금'은 옛말이 됐다.
특히 베트남 현지는 '인력 전쟁터'로 변했다.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몰려들며 현지 인건비는 가파르게 상승했고, 숙련공들은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는 곳으로 서슴없이 자리를 옮기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사람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한 협력사 대표는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며 "입사하면 축하금을 주고, 친구를 데리고 오면 소개비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고 토로했다.
제품 하나를 만들 때 인건비 비중이 20~30%를 차지하는데 정작 납품 단가는 제자리걸음이라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그나마 법적으로 보호(납품대금 연동제)라도 받지만 사람 몸값 오르는 건 고스란히 중소기업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끊임없는 '설비 투자'를 요구한다. 기술이 업그레이드 될 때마다 공장 라인을 새로 깔고 고가의 자동화 장비를 들여와야 한다.
문제는 이 막대한 투자비를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은 정부 지원을 받아 3%대 저금리로 돈을 빌리지만 해외에 공장을 둔 중소기업은 '해외 법인'이라는 이유로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결국 7~10%의 고금리 사채나 현지 대출에 의존해 대기업의 요구사항을 맞추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협력사들은 희생이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기업에 부품을 대던 건실한 일부 중견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쓰러지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쏟아부은 투자비는 회수가 안 되고 치솟는 임금과 이자 비용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들이 쓰러지면 결국 대기업의 공급망에도 치명적인 공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순한 하청업체의 도산을 넘어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이제라도 해외 진출 협력사들에게도 정책 금융의 길을 열어주고, 인건비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낙수효과가 사라진 마른 바닥에서 협력사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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