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사이트 이우찬 기자] 석유화학 산업 전반이 침체에 빠진 가운데 금호석유화학의 실적 선방이 주목받고 있다. 박찬구 회장이 사업 확장 국면마다 보수적 경영으로 신중하게 접근했던 점이 결과적으로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속도 조절에 나섰던 배터리 소재사업도 재무 부담 최소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7~8년 전 나프타분해설비(NCC) 증설에 공격적으로 나섰던 기업들은 지금 실적 악화라는 부메랑을 맞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의 올해 1분기 추정 연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760억원, 862억원이다. 1분기 매출·영업이익은 지난해 동기대비 각각 24.5%, 9.7%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체 매출의 60%가량을 차지하는 합성고무 사업이 순항한 것으로 파악됐다. 핵심 제품 중 하나로 타이어에 쓰이는 SBR은 제한적인 증설로 판가 인상이 이뤄졌고 스페셜티에 속하는 NB라텍스 사업도 지난해를 저점으로 반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실적은 석유화학업계 전반이 업황 부진을 겪는 것과 다른 행보로 풀이된다. 롯데케미칼은 1분기 1000억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LG화학도 석유화학 사업부문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의 평가도 유사하다. 지난 4월27일 종가 기준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시가총액은 3년 전 같은 날과 비교해 각각 56%, 60% 감소했으나 금호석유화학은 31% 줄었다. 업황 부진이라는 공통된 위기에도 몸값 하락률의 폭이 다른 셈이다.

금호석유화학은 NCC 설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기업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를 비롯해 주요 석유화학기업들이 NCC 설비를 보유하고 있고 2010년대 후반까지 증설을 이어온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NCC는 플라스틱의 기초소재로 쓰이는 에틸렌 등을 생산한다. 국내 석유화학기업들은 글로벌 인구 증가라는 수요 확대에도 중국발 공급 과잉이라는 악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주요 기업들은 NCC 설비 일부 매각을 타진하고 있을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
박 회장은 체급보다 체력을 키우는데 공들여왔다. 보수적 경영 스타일은 이 같은 불황 국면에서 회사가 실적 방어를 이룰 수 있는 동력이 됐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7~8년 전 경쟁사들이 잇따라 NCC 설비 투자에 나설 때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업계에서 중국발 과잉 공급을 우려하는 시각은 그때도 있었고 결국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터리 소재 사업도 금호석유화학의 보수적 경영 기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성장 동력으로 2020년 초반 뛰어든 이차전지용 탄소나노튜브(CNT) 사업은 확장의 속도를 조절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캐파(CAPA)는 올해 기준 360톤으로 이마저도 최근 기존 120톤에서 3배 늘린 규모다. 2900톤의 경쟁사 LG화학과 비교하면 공격적인 증설로 평가하기 어렵다.
박 회장의 신중 모드는 2017년과 2021년 금호타이어 인수전에서 두 차례나 거듭 인수 의사가 없다고 부인한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금호그룹에 있던 금호타이어는 타이어 원재료인 합성고무 등을 금호석유화학에서 공급받는 기업이었다. 금호석유화학이 지분 일부를 보유해 시장의 관심이 많았다. 박 회장은 인수를 통한 수직계열화보다 본업 경쟁력 제고를 앞세워 고객사 확대에 공들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 측면에서도 보수적 경영은 나타난다. 설비투자(CAPEX) 규모를 최소화하면서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경영을 펼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024) 금호석유화학의 CAPEX는 연평균 3980억원으로 집계됐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의 경우 각각 연평균 9조6000억원, 2조원이었다.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CAPEX 등을 차감한 잉여현금흐름의 경우 LG화학, 롯데케미칼이 마이너스(-) 1조원을 훌쩍 상회하고 있으나 금호석유화학은 -10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업황 악화 속에 설비투자 규모 확대를 제한한 것으로 분석된다.
재계 관계자는 "박 회장은 신사업을 추진해도 속도감 있게 확장하는 스타일의 경영자는 아니다"며 "잘하는 사업의 경쟁력을 더 키우는 데 공들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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