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연경 기자] "정부가 K-뷰티를 수출 산업으로 키운다고 하는데 정작 정책 지원은 너무 없다." 최근 뷰티업계 관계자가 꺼낸 얘기다. 거창한 말과 달리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는 뜻이다.
숫자만 보면 K-뷰티는 이미 '성공한 산업'에 가깝다. 수출액은 2022년 79억달러에서 지난해 114억달러로 급증했다. 섬유·가전·2차전지를 앞지르며 존재감을 키웠고,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한 31억달러를 기록하며 신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성장을 떠받친 핵심 인프라는 정부보다 민간이 주도해왔다. 글로벌 유통망은 실리콘투 같은 벤더 기업들이 확장했고, 판로 역시 올리브영의 역직구 채널이 빠르게 키웠다. 업계에서는 "민간 기업들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상당 부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마중물을 붓기 전에 민간이 이미 펌프를 설치하고 물을 퍼 올린 셈이다.
정부의 대응은 다소 뒤늦었다는 지적이 따른다. 수출 규모가 커진 이후에야 관계 부처 장·차관들이 현장을 찾기 시작했고, 국무총리실은 화장품육성위원회(가칭)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마저도 설립을 처음 제안한 건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 대표였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벤더 중심의 유통 구조에서는 브랜드가 수수료 체계에 종속되기 쉽고 협상력도 제한된다. 직접 수출을 확대하려 해도 유통망을 쥔 벤더와의 관계를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의존이 깊어질수록 브랜드가 지불해야 할 비용도 커진다.
그렇다고 정부 지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코트라는 매년 뷰티 기업을 대상으로 해외 박람회를 개최하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번 중동 리스크 대응 긴급 수출바우처 지원에서 K-뷰티를 전략 품목으로 분류해 평가 가점을 부여했다.
하지만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박람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실질적인 수출 계약이나 투자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바이어들도 코트라에서 거마비를 받고 오는 경우가 많아 참석만 하고 끝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수출바우처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 전략 품목 기업당 최대 1억 원 수준의 지원은 이미 외형이 커진 K-뷰티 기업 입장에서는 체감도가 낮다. 제도의 속도가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K-뷰티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주도 기업이 없다. 몇 명의 직원만으로 운영되는 인디 브랜드 수백 개가 각자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구조다. 그래서 지원이 더 촘촘해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다.
현재로선 이 역할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전담 조직이 부족하다. 농식품에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콘텐츠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있지만, 화장품 산업만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지원 체계는 부재하다. 특히 유럽처럼 성분 규제와 인증 기준이 까다로운 시장에서는 중소 브랜드가 단독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결국 기업들은 유통뿐 아니라 규제 정보까지 민간 벤더에 의존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종속 구조로 이어진다.
이 문제는 K-뷰티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수 한계에 부딪힌 주류·식품 등 소비재 기업들도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반도체 중심의 지원 구조에서 이들이 설 자리는 여전히 좁다.
K-뷰티는 분명 민간의 힘으로 여기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다음 도약은 다른 이야기다. 인디 브랜드 수백 개가 각자의 힘으로 글로벌 규제와 브랜드 경쟁을 뚫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은 단순한 지원 확대가 아니라 정부가 진짜 역할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마중물을 놓쳤다면, 이제는 물길을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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