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기아가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경쟁 심화와 전기차(EV) 수요 둔화 여파로 올해 글로벌 총 판매 목표 대수를 전년과 동일한 320만대로 제시했다. 하지만 친환경차 목표치를 오히려 30% 가까이 올려 잡으며 시장 선점에 대한 의지를 과감하게 나타내고 있다.
친환경차 판매 비중 확대는 기아의 외형·내실 성장을 견인할 전망이다. 고부가가치 차종인 만큼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이 기대되는 데다 마진이 많이 남는 만큼 이익률을 제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올해 친환경 판매 목표 공개…'캐즘' 전기차 60% 상향
12일 기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한 친환경차 총 대수는 59만8846대로, 전년 동기(49만2593대)보다 21.6% 증가했다.
세부적으로 ▲하이브리드(HEV)는 22.5% 증가한 31만1671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8.7% 늘어난 8만8861대 ▲EV는 26.7% 확대된 19만8314대로 각각 집계됐다. 기아가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총 308만5771대를 판매한 만큼 친환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4%포인트(p) 상승한 19.4%였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기아가 현대차그룹 맏형인 현대차와 달리 올해 친환경차 판매 목표를 선제적으로 공개했다는 점이다. 기아는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 ▲HEV 37만1865대 ▲PHEV 8만1858대 ▲EV 30만7165대 총 76만888대를 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23년 총 판매 실적 대비 27.1% 증가한 숫자인데 HEV와 EV는 각각 19.3%, 54.9% 상향했다. 비교적 인기가 떨어지는 PHEV의 경우 전년보다 7.9% 축소됐다. 각 차종 별 비중은 ▲HEV 52%→48.9% ▲PHEV 14.9%→10.7% ▲EV 33.1%→40.4%로 변동됐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에 진입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아가 설정한 목표치는 매우 공격적이다. 통상 캐즘이 발현되는 시점은 시장 침투율이 15~16%에 도달했을 때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침투율이 16% 수준이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수요 정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전기차 성장 곡선은 점점 완만해지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2021년 115%로 정점을 찍었으나 이듬해 68%로 반토막났고, 지난해 31%까지 떨어졌다.
기아의 친환경차 판매 대수도 이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아가 올 들어 5월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총 5만1030대로, 연간 목표치의 16.6% 밖에 채우지 못했다. 그나마 HEV와 PHEV가 각각 15만9199대, 7만769대씩 팔리며 42.8%, 86.5%의 달성률을 기록 중이다. 다만 전체 판매 대수(128만6111대)에서 친환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1.8%로 사상 최대치를 찍었다.
◆ 전기차 대중화 선점…비싼 만큼 고마진, 외형·내실 동반 성장
기아가 비우호적인 영업 환경에도 친환경차 판매 목표를 공격적으로 설정한 이유는 시장 선점이다. 전기차 시장의 숨고르기가 끝날 때까지 대체제인 HEV로 양적 성장을 지속하고, 전기차 대중화가 본격화되면 기존 주도권을 앞세워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전략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기아는 올 상반기 말 기준 영국 자동차 시장에서 총 10만191대를 판매하며 폭스바겐, BMW, 아우디에 이어 판매 4위 브랜드에 등극했는데, 발 빠른 친환경차 출시 전략이 주효했다. 영국은 유럽에서도 친환경차 비중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국가로, 2021년 27.5%였던 현지 친환경차 비중은 현재 40%에 근접한 상태다. 기아는 지난해 ▲쏘울EV ▲니로EV ▲EV6 ▲EV9을 선보이며 판매 속도를 올리고 있다.
아울러 친환경차는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고가인 만큼 전반적인 매출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기아의 해외 승용차의 ASP는 3253만원이었으나, 올 1분기 말 기준 3307만원으로 약 2% 늘었다. 같은 기간 해외 레저용차량(RV) 가격은 4546만원에서 5944만원으로 30.8% 인상됐다. 여기에 더해 고환율 기조가 지속되면서 적지 않은 추가 매출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기아는 친환경차 판매 비중이 늘어날수록 이익 체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값이 비싼 만큼 남는 수익이 더 많기 때문이다. 통상 제조업 영업이익률이 5% 안팎 수준임에도 기아가 10%를 훌쩍 웃도는 수치를 달성한 배경이기도 하다.
예컨대 기아는 올 1분기 말 연결기준 매출 26조2129억원과 영업이익 3조4257억원을 기록하며 영업이익률 13.1%를 달성했다. 나아가 증권가가 추정하는 기아의 2분기 실적은 매출 27조6922억원, 영업이익 3조6454억원이다. 이익률은 13.2%로 더욱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데, 친환경차 판매 확대가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아 관계자는 "적극적인 친환경차 라인업 운영으로 양적 성장 뿐 아니라, 질적인 측면에서도 우수한 상품성을 인정받으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아는 올 하반기 양산형 전기차인 'EV3'의 판매를 개시하며 친환경차 비중 확대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EV3의 올해 연간 판매 계획은 총 2만8000대이며,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선적은 오는 9월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새로운 눈으로 시장을 바라봅니다. 딜사이트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