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가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생명보험사인 ABL생명은 잦은 손바뀜으로 험난한 여정을 이어왔는데 이번에야말로 안식을 찾을 수 있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에 ABL생명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과 경영 현황, 매각 가능성 등을 짚어본다.
[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제일생명, 조양상선그룹, 독일 알리안츠그룹, 중국 안방보험그룹, 중국 다자보험그룹. 이들의 공통점은 한때 ABL생명의 주인으로 이름을 올렸거나 현재 대주주로 있는 곳이다.
ABL생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경영 전략은 달라졌고 노사 갈등도 생겼다. 특히 2016년 ABL생명을 인수한 중국 안방보험그룹은 그룹 자체가 흔들리면서 ABL생명에 눈길을 줄 틈도 없었다. 우여곡절 속에서 ABL생명은 성장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업계 지위도 차츰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때 자산 기준으로 4위였던 ABL생명의 생명보험업계 순위는 현재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ABL생명의 자산총계는 약 17조원이다. 순위로 따지면 생명보험사 22곳 가운데 12위다.
삼성생명이 280조원 정도로 압도적으로 크고 교보생명(116조원), 한화생명(113조원) 등은 100조원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은 신한라이프(57조원), NH농협생명(53조원), 동양생명(32조원), 미래에셋생명(32조원), 메트라이프생명(23조원) 순이다.
보험사 성장에서 자산 규모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ABL생명의 순위 하락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보험사는 영업과 운영 등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크게 보고, 수익의 상당부분을 투자사업에서 거두는 만큼 자산 규모나 시장점유율 확보 등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게다가 ABL생명은 중국 다자보험그룹으로 최대주주가 바뀐 뒤 줄곧 매각 대기 상태로 놓여 있는데 자산 규모는 매물로써의 매력도와 연관성이 깊다. 당장 보험사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우량 매물로 꼽히는 롯데손해보험이나 동양생명만 봐도 자산 규모가 업계 6~7위 정도다.
우리금융지주가 지난 6월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비구속적 양해각서(MOU)를 맺고 동양생명과 ABL생명 동시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양생명과 달리 ABL생명 인수 가능성과 관련 시장에서 끊임없이 물음표를 보내는 시선이 적지 않은 이유도 자산 규모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ABL생명이 경쟁 보험사에 자리를 내준 데에는 지배구조 영향도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단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던 만큼 불안정한 경영 상황에 놓일 때가 많았다. 독일 알리안츠그룹과 안방보험그룹 지붕 아래 있을 때는 외국계라는 이유로 틈틈이 철수설에 시달리기도 했다.
더욱이 중국 안방보험그룹이 2018년 중국 정부의 위탁경영을 받게 된 뒤로는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이다. 최근 수년 동안 보험업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이었는데 지배구조 문제로 ABL생명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1999년 ABL생명의 전신인 제일생명이 조양상선그룹을 떠나 독일 알리안츠그룹 품에 안길 때만 해도 ABL생명의 자산 순위는 4위였다. 당시 '톱3'로 묶이던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등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4위가 갖는 상징성은 컸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순위가 차츰 밀리기 시작했다. ING생명, 동양생명, 미래에셋생명 등이 빠르게 자산을 불렸고 2012년 NH농협생명도 설립됐다. 이와 비교해 ABL생명은 덩치를 빠르게 키우지 못했고 어느덧 순위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2000년대 초반 자산 순위 4위 자리를 놓고 다투던 ING생명(현 신한라이프)과 비교하면 ABL생명의 더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ABL생명과 ING생명은 자산 규모가 비슷한 데다 외국계 보험사라는 공통점도 있어 자주 비교 대상이 됐다.
ING생명의 자산총계는 2005년 5조원 수준에서 2020년 33조원으로 6배 넘게 불었다. 같은 기간 ABL생명의 자산총계는 7조원에서 20조원으로 증가했다. ING생명은 신한금융지주에 인수된 뒤 2021년 7월 신한생명과 통합돼 신한라이프가 됐다.
ABL생명의 전신은 1954년 세워진 제일생명보험이다. 1973년 제일생명을 인수한 조양상선그룹은 금융 위기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1999년 독일 알리안츠그룹에 제일생명을 매각했다. 알리안츠그룹 품에 안기며 제일생명은 알리안츠생명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2016년 중국 안방보험그룹에 인수되면서 다시 ABL생명이라는 새 사명을 달았다.
이후 안방보험그룹이 부실 경영과 우샤오후이 전 회장의 비리 의혹 등으로 중국 정부의 구조조정 대상이 되면서 ABL생명의 최대주주도 바뀌었다. 중국 정부는 2019년 다자보험그룹을 세우고 안방보험그룹에 있던 동양생명과 ABL생명 등 주요 우량자산을 다자보험으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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