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안위와 경제 주권을 지킬 전략 자산이자, 꺼져 가는 제조업에 다시 불을 지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전쟁의 골든타임을 사수할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낡은 규제를 걷어낸 '특구(特區)'에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테슬라 '옵티머스'와 맞붙을 현대차그룹 '아틀라스'부터 생존을 위해 로봇 기업으로 변신하는 부품사의 사투, IPO(기업공개)와 동반성장펀드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흐름까지 치열한 로봇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로봇 산업이 과거 개별 기업 간의 기술적 우위를 다투는 전장이었다면, 202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좌우하는 '국가 대항전'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첨단 제조 시설의 온쇼어링(생산 시설 자국 이전)을 강제하며 로봇 기술을 반도체와 같은 수준의 국가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켰고, 중국 역시 '로봇플러스(+) 응용행동계획'을 내세우며 제조 강국 도약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로봇이 단순한 산업 효율화의 도구를 넘어 군사·안보·경제 주권을 수호하는 방패이자 창이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직면한 '인구 구조의 역변'과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이라는 거시적 위험은 로봇 기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출산율 하락과 생산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은 막을 수 없는 필연적인 현실이다. 로봇 역량이 한 국가의 제조업 펀더멘털을 지탱하고 미래 경쟁력을 가늠하는 유일한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선제적인 '로봇산업 클러스터' 또는 '로봇특구'의 조성은 단순한 신기술 육성책을 넘어 국가 제조업의 붕괴를 막고 사회적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 공급망 내재화·특구 지정 필요성…규제 샌드박스 성과
로봇 산업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전략적 안보 자산으로써 위상을 갖추고 있다. 과거의 글로벌 공급망이 '효율성'과 '비용 절감'에 주안점을 뒀다면, 지금은 자국 내에 완결된 생산 체계를 구축하는 '공급망 내재화'와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국가는 반도체와 배터리에 이어 로봇을 차세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제조업의 무기'로 규정하고 총력전을 펼치는 배경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의 로봇특구는 기술 주권 확보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내 로봇 산업의 경우 감속기, 서보모터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이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완제품을 많이 팔아도 부품 수입으로 국부가 유출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단순한 실증 단지를 넘어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완제품 기업이 집약된 로봇 클러스터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핵심 부품의 자급율을 높이는 데 더해, 외부 충격을 버티는 독자적인 로봇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운영된 특구의 성과는 이러한 논리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예컨대 대구광역시는 2020년 8월 지정된 '이동식 협동로봇 규제자유특구'로 제조 공정의 혁신 가능성을 입증했다. 과거 산업안전보건기준상 로봇은 이동 중에 작업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특구 내 실증으로 이동 중 작업이 허용됐으며, 그 결과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간 생산성이 평균 9.3% 증가했다. 참여 기업들은 15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1000억원이 넘는 직·간접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세종특별자치시의 2020년 11월 '자율주행 실외 로봇 특구' 지정도 있다. 공원녹지법상 30kg 이상의 동력 장치 출입이 제한된 공원에서 자율주행 로봇이 음식 배달과 방역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세종 중앙공원과 테크밸리 일대 1.863㎢ 면적에서 축적된 주행 데이터는 지능형 로봇법 개정의 근거가 됐으며, 로봇이 통제된 실내를 벗어나 인간과 공존하는 실외 공간으로 진출하는 교두보가 됐다. 여기에 더해 대구시가 오는 2028년까지 약 2000억원 규모의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조성할 계획인 만큼, 국내 로봇 산업의 글로벌 표준 선점을 위한 하드웨어 기반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 현대차그룹·테슬라 등 모빌리티 혁명…안보 로봇의 부상
국가 차원의 인프라 조성과 맞물려 민간 영역, 자동차 산업에서의 로봇 기술 내재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자동차를 '바퀴 달린 로봇'으로 재정의하며 모빌리티와 로보틱스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 이후 제조 현장과 일상에 투입 가능한 로봇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는 기존 유압식 대비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정밀 제어 능력을 높였다. 또 현대차 로보틱스랩은 반도체 스타트업과 협력해 5W(와트) 이하 초저전력으로 구동되는 로봇용 인공지능(AI) 칩을 자체 개발하는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기술 독립을 추진 중이다.
테슬라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자사 전기차 생산 라인에 투입돼 실전 검증을 거치는 중이다. 주목할 점은 테슬라 자율주행 차량에 적용된 FSD(완전자율주행) 신경망 기술이 로봇에 그대로 이식됐다는 점이다. 이는 자동차의 자율주행 기술이 로봇의 보행 및 인지 기술과 뿌리를 같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볼 수 있다.
안보 차원에서 보더라도 로봇의 위상은 대체 불가능한 전략 자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 최근 국제 분쟁에서 드론과 무인 로봇이 전장의 승패를 가르는 '게임 체인저'로 등장했다. 병력 자원 감소로 유인 체계 유지가 어려워진 만큼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 구축은 시급한 국방 과제로 꼽히고 있다. LIG넥스원은 미국 '고스트로보틱스'를 인수해 4족 보행 로봇 기술을 확보했고,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목적 무인 차량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방산 로봇은 병력 감소 시대에 전력 공백을 메울 '제2의 상비군'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 법 테두리 벗어난 '테스트베드'…'年 20% 성장' 로봇 전쟁 승부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봇 기술 패권 확보를 위한 전략적 전초기지인 '규제자유특구' 고도화 필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직된 기존 법제도와 규제의 틀을 파괴해 기술 상용화 속도전에서 우위를 점하고,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승부수라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정부가 추진 중인 '기회발전특구'와 로봇특구를 연계할 경우 지방 거점 도시에 로봇 기업을 유치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지방 소멸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로봇특구는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닌,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위한 테스트베드다. 인구 소멸이라는 불가피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의 생존 키트이자,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터에서 아군을 보호할 진지 구축 작업이다. 글로벌 로봇 시장은 2030년까지 연평균 20% 이상 고성장이 예견된다. 우리 기업들이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걷어낸 특구 안에서 실증하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지난해부터 '휴머노이드 맥스 얼라이언스' 등 로봇 생태계 조성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구개발(R&D)과 같은 단순 지원이 아니라,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기술 도입에 속도를 맞추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규모 실증사업은 효용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대규모 실증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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