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신지하 기자]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가격 급등 여파로 삼성전자 사업부별 실적 흐름이 엇갈리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운 반도체(DS)부문은 실적이 빠르게 개선된 반면, 모바일과 TV, 가전 등 완제품(세트)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수요 둔화와 원가 부담이 겹치며 실적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에만 올린 20조원대 영업이익은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메모리 업황 회복 효과가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래 성장 투자를 지속하는 한편, 원가 절감과 운영 효율 개선에도 힘을 기울이겠다는 전략이다.
29일 삼성전자가 진행한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는 메모리 시황 회복이 전사 실적과 사업 전반에 미친 영향이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이날 지난해 4분기 연결 기준 매출 93조8374억원, 영업이익 20조737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23.8%, 영업이익은 209.2% 급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특히 국내 상장사 분기 실적으로 영업이익 20조원대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호실적은 반도체(DS)부문이 이끌었다. DS부문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16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65.5% 급증했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메모리 시황 회복과 함께 서버용 중심의 고부가 제품 판매 확대가 맞물리며 전사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
반면 모바일과 TV, 가전 등을 담당하는 DX부문 영업이익은 1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1% 감소했다. 세부적으로 MX·네트워크사업부 영업이익은 1조9000억원으로 9.5% 줄었고, VD·DA사업부는 6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메모리와 주요 부품 가격 상승, 글로벌 관세 부담 등이 세트부문 원가를 끌어올린 영향이다. 같은 메모리 시황 회복이 DS부문에는 실적 개선으로, DX부문에는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며 상반된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에 컨퍼런스콜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시황 회복과 그 파급 효과를 둘러싼 질문이 주를 이뤘다. 특히 메모리 가격 상승이 세트 사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사업부별 대응 전략에 관심이 쏠렸다.
우선 삼성전자는 올해도 AI 서버를 중심으로 메모리 수요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회사는 "현재 기준 준비된 HBM 캐파(생산능력)에 대해서는 고객들로부터 전량 PO(구매주문)를 확보했다"며 "올해 HBM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확대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신 6세대 HBM4는 고객사 평가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다음 달부터 양산 출하에 들어갈 계획이다. 차세대 제품인 HBM4E도 연내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할 예정이다. 다만 증설과 관련해서는 AI 수요 확대에 대비한 인프라는 선제적으로 확보하되, 실제 설비 투자는 수요 가시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DX부문 내 각 사업부는 메모리 가격 상승과 주요 부품 단가 인상으로 원가 부담이 확대되면서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데 공감대를 보였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은 자사뿐 아니라 업계 전반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요 협력사와의 전략적 협업과 비용 효율화를 통해 영향을 최소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MX사업부는 스마트폰 시장 전반의 수요 둔화 속에서도 플래그십 중심의 판매 전략을 유지하며 평균판매가격(ASP) 방어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VD·DA사업부도 경쟁 심화와 소비 위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프리미엄 제품 비중 확대와 AI 기능 차별화로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날 삼성전자는 특별배당을 포함, 주주환원 기조를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회사는 지난해 4분기 결산을 반영해 1조3000억원 규모의 특별배당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회사는 "정부의 '배당소득 분리과세' 제도 도입으로 주주들의 실질적인 배당 수익이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점을 고려했다"며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창출한 잉여현금흐름(FCF)이 36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이를 재원으로 정기 배당과 추가 배당, 자사주 소각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중장기 성장 투자와 재무 건전성을 함께 고려하면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환원 정책을 안정적으로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환원 규모와 방식은 향후 투자 집행과 재무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올해 1분기 내 이사회에서 자사주 소각 일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현금 창출력도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연간 영업활동현금흐름은 85조32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47조52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CAPEX)를 집행하고, 8조1900억원의 자사주 취득과 9조9000억원의 배당금 지급을 병행했지만 메모리 업황 회복에 따른 영업현금 유입이 이를 웃돌았다. 이에 따라 현금성자산은 전년 말보다 약 13조원 늘었고, 순현금 규모도 100조6080억원으로 2022년(104조9000억원) 이후 3년 만에 다시 100조원대를 회복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 2023년 2월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차입한 20조원의 조기 상환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의 현금 보유력과 무차입 경영 기조를 유지해온 삼성전자가 자회사로부터 운영자금을 차입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받아들여지며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공시에는 차입금의 상환 방식으로 만기 일시 상환을 명시하면서도 임의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는 조건도 포함됐다.
이후 삼성전자는 자회사에서 차입한 20조원을 평택캠퍼스와 미국 테일러 공장 등 파운드리 첨단 공정 투자에 투입해왔다. 당초 해당 차입금의 만기일은 지난해 8월이었으나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도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관세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차입 계약을 한 차례 연장, 오는 2028년 2월로 조정했다.
다만 최근 메모리 시황 회복으로 현금 창출력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재무 여건과 투자 집행 흐름에 따라 조기 상환을 검토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차입금 상환이 이뤄질 경우 삼성디스플레이의 자금 운용 폭이 넓어지면서, 8.6세대 IT용 OLED 양산 준비와 기술 개발 등 중장기 투자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기 상환 여부와 관련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내부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며 "향후 관련 사항이 결정될 경우 공시를 통해 안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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