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최지혜 기자] 시간이 돈이다. 이 흔한 격언은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원에게 만큼은 단순한 비유 이상이다. 사업 지체가 이자 비용과 건설비 상승으로 직결돼 수백억 원대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시공사는 사업 타임라인을 좌우하는 핵심 주체다. 시공사가 수주 당시 제시한 계획이 충실히 이행돼야만 사업은 순항할 수 있다.
문제는 시공사의 공약 이행에 제도적 테두리가 없다는 점이다. 도시정비사업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보호원, 국토교통부까지 관련 부처 중 시공사의 공약 강제 집행 권한을 가진 곳이 없다. 공약 불이행 시 조합은 민사 소송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데 소송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아 실제 진행 사례는 극히 드물다. 무단 설계 변경이나 부실 시공 같은 중대 사안이 아닌 단순 공약 미이행은 대부분 넘어간다.
시공권 계약 해지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조합 총회 결의로 해지·재선정은 가능하지만, 귀책 사유가 명확하지 않으면 조합이 시공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서울 방배5구역의 경우 조합이 시공사였던 롯데·포스코·GS건설의 시공권을 해지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 판단으로 조합이 50억원대 위약금을 물게 됐고, 사업은 2년 이상 지연됐다. 도급인 해제권(민법 제673조)를 근거로 해도 시공사 반소로 이어져 조합의 부담은 배가 된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이 공염불로 이어지는 사례는 빈번히 나온다. 한강변의 한 재개발사업은 건설사가 경쟁사와의 치열한 수주전에서 최고 21층 고층 아파트를 지어 일반분양 물량 확대와 사업 수익성 개선을 약속했으나, 사업지가 서울시 고도제한 완화 대상에서 제외되며 기존 14층 계획으로 돌아갔다. 이후 조합측이 제시한 블록 통합 및 관통도로 폐지안도 서울시의 도로 유지 방침에 부딪혔다.
이에 조합은 재신임 투표를 두차례 강행했으나 비용 문제로 시공권 유지 방침을 굳혔다. 건설사측이 시공사를 교체하면 약 2698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조합을 회유한 점이 주효했다. 최근 조합과 건설사가 논의 중인 최종 설계는 가구 규모마저 줄었다. 당초 조합이 제시한 1537가구보다 226가구 줄어든 1311가구 수준으로 계획했으나 시공권 해지는 수천억원대 비용이 예상돼 넘볼 수 없는 선택지에 불과한 실정이다.
올해 도시정비사업 시장이 75조원 규모로 확대되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고수익 사업지를 두고 치열한 수주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특히 압구정·성수·여의도·목동 등은 일제히 대형 건설사들의 전략적 사업지로 거론된다. 사업성이 우수한 단지일수록 경쟁 구도가 팽팽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현실화 불가능한 과대 공약이 난무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도시정비사업의 차질은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한 건의 계약에 최대 수천명에 이르는 조합원이 수조원의 사업비를 투입하기도 한다. 특히 도시정비사업은 '부동'하는 한정된 입지에 몰린 주거수요를 해결할 주거공급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잡은 분야이기도 하다. 조합과 시공사 간 민간 도급계약이 개인 간 계약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이유로 제도적 공백이 용인될 수는 없는 이유다.
동시에 건설업은 서비스 제공자와 수요자 간 정보격차가 큰 대표적 업종이다. 이에 조합이 시공사의 화려한 공약이 실현 가능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수주실적을 쌓기 건설사의 공약이 도시정비사업의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공약의 일정 수준 이행을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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