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윤기쁨 기자] 법무법인 태평양(BKL)이 자문을 맡았던 1조8000억원 규모 SK렌터카와 롯데렌탈 기업결합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연되면서 이 로펌의 M&A 트랙레코드와 수익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번 거래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롯데렌탈 지분 63.5%를 인수해 기존에 보유한 업계 2위 SK렌터카와 통합하려던 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공정위가 렌터카 시장 내 독과점 발생 가능성 등을 이유로 기업결합 불승인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이를 전담해온 태평양의 입장이 난처해진 상황이다. 특히 어피니티가 자문사를 태평양에서 법무법인 세종으로 교체하면서 태평양의 평판 및 수임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투자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태평양은 이번 거래 자문료 정산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재무적 손실을 입을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적으로 M&A 자문 계약은 딜 클로징을 전제로 성공 보수를 지급받는 구조로, 규제 당국의 불허 결정으로 딜이 중단되거나 장기 표류할 경우 성공 보수 청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미 투입된 인력들의 시간당 업무 비용 또한 자문료 감액 적용(헤어컷) 대상에 포함된다.
통상 대형 딜이 규제 리스크로 무산될 경우 전체 청구 비용의 20~30%를 감액하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관례다. 이번 딜의 규모와 심사 기간을 고려할 때 태평양이 감수해야 할 실질적인 손실액은 수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어피니티가 규제 대응 논리를 전면 재검토하면서 자문사를 세종으로 교체함에 따라 태평양은 그간의 자문 성과를 경쟁사에 내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무적 손실보다 더 큰 문제는 기업결합 자문 평판에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다. 태평양은 지난해 한화손해보험의 캐롯손해보험 인수 거래를 단독 주선하며 금융 M&A 시장에서 유의미한 레퍼런스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번 불승인으로 해당 성과가 희석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1·2위 사업자 간 결합이라는 상징성 높은 딜에서 규제 리스크 방어에 실패한 점은 향후 대형 수임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가 강화되는 기조 속에서 대관 역량 강화와 내부 자문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편 없이는 시장 내 점유율 방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거래에서 매도인인 롯데그룹 측 법률 자문은 법무법인 율촌이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율촌은 그동안 매각 절차 전반을 지원해 왔지만 거래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롯데그룹과 함께 후속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매각은 롯데그룹이 추진 중인 전반적인 재무구조 개선 및 구조조정 작업과 직결돼 있어, 거래 지연에 따른 그룹 차원의 자산 효율화 로드맵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매수 측 자문사인 태평양과 비교했을 때 율촌은 기업결합 승인 실패에 따른 직접적인 책임론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기업결합이 최종 무산된 것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어피니티가 공정거래법 제96조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이의신청을 제기하거나, 시장 점유율 조정 등 경쟁 제한성을 해소할 구조적 시정 방안을 마련해 재심의를 추진할 여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통상 이의신청은 처분 통지 후 30일 이내에 제기하는데 공정위는 접수 후 60일에서 90일 이내에 재결을 내리게 된다. 다만 재심의 과정에서도 규제 당국을 설득할 만한 뚜렷한 대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어피니티가 방향을 선회해 보유 중인 SK렌터카를 다시 매각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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