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슬이 기자] 현행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가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사례에는 적용되지 않아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 사례처럼 해외 법인을 경유한 순환출자의 경우 직접적인 규제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적용 범위 등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공정거래학회는 1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2026년 첫 월례 세미나를 열고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의 현황 및 개선 방향을 논의했다. 백윤석 KAIST 경영대학 교수가 사회를 맡고, 임영재 공정거래학회 회장이 발제한 토론에는 이호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참여했다. 임영재 회장은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자본시장과 공정거래법제 역사상 전례 없는 법적 복잡성을 나타내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외 법인을 경유한 순환출자를 탈법행위로 인정할 경우 향후 대기업집단 규제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해 1월 고려아연이 손자회사(SMC)를 통해 영풍 지분을 매입하며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한 과정과 이후 영풍의 대응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각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탈법행위 금지 조항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향후 제도 개선에 어떤 시사점을 주는 지를 검토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지난해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를 앞두고 KZ정밀(구 영풍정밀)과 최씨 일가가 보유하던 영풍 지분을 해외 법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으로 이전하며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출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로써 SMC의 영풍 지분율이 10%를 넘어서면서 상법 제369조 제3항이 적용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영풍 측은 보유 중이던 고려아연 지분 전량을 신설 유한회사인 와이피씨(YPC)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유한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고려아연 역시 이에 맞서 SMC가 보유한 영풍 주식을 선메탈홀딩스(SMH)로 현물배당 방식으로 이전하며 지분 보유 주체를 변경해 '영풍→YPC→고려아연→SMH→영풍'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했다. 이후 영풍이 정기주주총회에서 1주당 0.04주의 주식배당을 결의하면서 SMH의 영풍 지분율은 9.96%로 낮아졌다. 그러나 고려아연 측이 SMH를 통해 KZ정밀으로부터 영풍 주식 1350주를 취득하면서 지분율을 다시 1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이 계열사 간에 형성하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지만 규제 대상을 '국내 계열사에 대한 계열출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해외 계열사가 개입된 출자 구조의 경우 규제 적용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번 사례에서도 고려아연의 호주 자회사인 SMH와 SMC 등을 통해 순환출자가 형성되면서 규제의 적용 범위를 둘러싼 공백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임 학회장은 "이번 사례는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라며 "기존에는 방어적 성격으로 이해되던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경영권 분쟁에서 공격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구조가 법 규정의 취지를 우회하는 '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형식적으로는 해외 법인을 통한 거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 기업집단의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규제 회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손자회사를 통한 지분 취득과 같은 방식이 실질적으로는 직접 취득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탈법행위 판단의 주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행 법이 해외 투자 구조가 복잡해진 대기업 집단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만큼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개선 방안으로는 순환출자 규정에서 '국내 계열회사'라는 한정 문구를 삭제하거나 '국내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국외 계열회사'를 추가하는 방식이 제기됐다.
또 국내 기업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해외 법인이 국내 계열사 주식을 취득할 경우 이를 국내 회사의 직접 보유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실질적 지배' 기준의 도입도 거론됐다. 다만 이 같은 규제 보완이 정상적인 해외 투자 구조까지 포괄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적용 범위와 기준을 어디까지 설정할 지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날 토론을 맡은 이호영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같은 논의가 특정 사례를 계기로 과도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상법과 공정거래법이 결합된 구조에서 나타난 문제인 만큼 어느 한쪽의 단편적인 개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제도 전반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순환출자 규제 전반에 대한 점검과 함께 신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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