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너제이(미국)=이세연 기자] 엔비디아가 매년 개최하는 'GTC 2026'는 글로벌 AI 컨퍼런스라는 명칭에 걸맞게 AI 생태계를 한눈에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초창기만 해도 엔비디아 자체 기술을 소개하는 발표회 성격이 강했지만, 이제는 엔비디아의 AI 생태계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기업이라면 부스를 차리고 참여하는 대형 산업 행사로 자리 잡았다. 1000여개에 달하는 세션을 자유롭게 골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참관객들의 '학구열'을 끌어올리는 요소였다.
이렇다 보니 일부 참관객들은 GTC를 AI 역량을 넓히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처럼 활용하는 분위기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 AI 업계 관계자는 "우리 회사에서는 십수 명이 출장 왔다. 피지컬 AI, 에이전트 AI 등 주제를 나눠 2인 1조로 정보를 수집한 뒤 서로 공유하기로 했다"며 "저는 피지컬 AI를 맡았다.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마음에 들면 향후 관련 업계로 이동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주 유럽 출장을 간 지 사흘 만에 곧바로 미국으로 오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GTC를 꼭 참관하고 싶어 한걸음에 달려왔다"며 "행사 기간 동안 자기 계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행사 첫날에만 업무와 관련된 자격증 시험을 두개나 진행했다"고 말했다.
행사의 꽃은 단연 부스였다. 가장 참관객들이 오래 시간을 머무는 부스는 단연 엔비디아의 부스였다. 엔비디아는 행사장 한 면에 가로로 길게 늘어진 부스를 차렸다. 베라 루빈 등 차세대 AI 가속기 모델의 컴퓨트 트레이 모델을 본뜬 형태로 전시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쇼케이스 안에서 조명을 받으며 웅장하게 자리한 모델들 앞에서 그 존재감에 걸맞은 묵직한 질문들이 오갔다.
업계 관계자들이 특정 AI 가속기를 가리키며 "모듈이 몇 개 들어가 있느냐", "레드 플레이트 구조가 있느냐", "각 트레이가 CDC 스파인에 꽂히는 구조인가", "랙 안의 칩들이 올투올(all-to-all)로 연결되는가" 등을 잇달아 물어, 현장에 있던 엔비디아 관계자가 컴플라이언스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설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현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생산하고 있는 그록3 칩이 탑재되는 그록3 LPX 랙도 큰 관심을 모았다. 현장에 있던 엔비디아 관계자는 "이 장비는 첫 번째 솔루션"이라며 "현재 팀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반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어 향후 다양한 솔루션이 추가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90일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양산 단계까지 도달한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부스 한편에서는 특정 부품을 10분 이상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고 관계자에게 질문을 이어가는 관람객도 눈에 띄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데이터센터용 맞춤형 전력 시스템을 다루고 있다"며 "전력망부터 칩 서비스, 전기 인프라까지 연결되는 구조라 부품 하나하나가 궁금하다. 계속 사진을 찍고 설명을 듣느라 부스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좀 더 둘러보면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반 로보틱스 시연도 눈길을 끈다. 엔비디아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과자를 집어 참관객에게 건네는 장면이 나오자 주변에서는 일제히 스마트폰 카메라가 올라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로보틱스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도 자사 로봇을 앞세워 시연에 나서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협동로봇 시장의 선두 기업인 테라다인 로보틱스는 '협동 로봇 팔' 시연을 진행했다. 사람이 원격으로 조작하며 로봇이 특정 작업을 학습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사람이 하기 까다로운 부품 조립 작업 등을 대신 수행하도록 훈련시키는 '학습 셀' 개념이다.
테라다인 로보틱스 관계자는 "지금 막 출시하는 단계"라며 "주요 고객은 데이터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나 자체적으로 로봇 AI 모델을 학습시키려는 대기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용 분야는 전자, 파운드리, 자동차 제조 등 다양한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국내 메모리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부스도 눈길을 끌었다. 두 회사 모두 부스 규모를 과도하게 키우지는 않았다. 대신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제품을 둘러보도록 구성해 전시 효율을 높였다. HBM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행사인 만큼 지나치게 눈에 띄기보다는 협력 관계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춘 모습이었다.
삼성전자는 부스 전면에 HBM4와 HBM4E의 실물 칩과 웨이퍼를 전시했다. 벽면에는 'AI 팩토리'와 '피지컬 AI' 등 엔비디아가 강조하는 키워드를 크게 배치했다. 내부에는 LPDDR5X, SoCAMM2, GDDR7 등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메모리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서로 가까이 배치했다.
SK하이닉스는 개방감을 강조한 부스를 구성했다. HBM을 100만배 확대해 표현한 모델을 시작으로 HBM, LPDDR5X, eSSD, cHBM 등 실물 칩을 원형 동선으로 배치했다. 관람객이 한 방향으로 이동하며 제품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체험형 전시를 도입해 조이스틱 게임을 통해 반도체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근에는 관람객들이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는 방식을 선호해, 게임 요소를 결합하여 부스를 꾸렸다"고 말했다.
행사를 지켜본 한 참관객은 "이 현장을 보면 엔비디아의 실적을 두고 제기되는 우려들이 무색할 정도"라고 평가했다. 최근 업계에서는 AI 수요 성장세가 둔화될 경우 엔비디아의 실적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또한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사용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현재는 데이터센터를 공격적으로 증설하고 있으나, 전력과 인프라 등 현실적인 제약이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성장세 자체는 앞으로도 완만히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 관계자는 "지금의 AI 수요 증가세는 일종의 '보험' 같은 측면도 있고, 인프라 확장 과정에서 여러 도전 과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앞으로 수요가 줄어들기보다는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완만히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젠슨 황이 강조하는 '추론' 역시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해법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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