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조은비 기자] "전장(戰場)은 하나로 특정 지을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합니다. 자폭용 드론은 출력이 생명이고, 잠수함은 20년 수명이 관건이죠. 결국 배터리가 이 모든 노후 기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포스코퓨처엠 현장 관계자)
1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 현장은 더 이상 전기차(EV)만의 잔치가 아니었다. 캐즘(수요 정체)을 뚫기 위한 K-배터리의 시선은 이제 '국방과 에너지 안보'라는 새로운 영토로 향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방산 테마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곳은 포스코퓨처엠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잠수함 및 드론용 맞춤형 소재'를 부스 한 편에 마련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방산용 배터리는 민간 전기차와 달리 작전 목적에 따라 요구되는 성능이 극명하게 갈린다. 잠수함의 경우 수중 잠항 시간과 장비 신뢰성을 위해 10~20년에 달하는 장수명 특성이 필수적이다. 반면, 드론은 회수를 전제로 하지 않아 수명보다는 무거운 폭발물을 싣고 이륙할 수 있는 고출력 성능에 모든 기술력을 집중한다.
이러한 기술력은 이미 실질적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포스코퓨처엠의 최종 고객사가 잠수함 사업 수주에 성공하면서 관련 소재 공급을 위한 기술 협력이 긴밀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대외비 사안이라 구체적인 모델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포스코퓨처엠의 최종 고객사(End Client)가 실제로 잠수함 사업을 수주했다"며 "아직 양산으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노력 중이며, 그만큼 소재 다양화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이 소재 국산화와 양산 준비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배터리 소재가 곧 국가 무기 체계의 독자적 운용을 결정짓는 '방패'가 되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배터리 소재의 국산화는 단순한 산업 경쟁력을 넘어 자원 안보와 직결된다"며 "양극재의 경우 무기 체계의 작전 목적에 맞춘 기술 개량이 핵심이라면, 음극재는 조달의 안정성이 최우선"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음극재 시장은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하지만 전시 상황에서 타국으로부터 소재를 조달받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스코퓨처엠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천연·인조흑연 음극재 양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독자적인 무기 체계를 운용하기 위한 필수 선결 과제이자 강력한 안보 자산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전시장 중앙에 AI 데이터센터용 'JP6 UPS(무정전 전원장치) 랙'과 BBU(Battery Backup Unit) 솔루션을 배치했다. 고도의 신뢰성을 요구하는 인프라 기술은 방산 분야와 접점이 넓지만, LG엔솔은 '기술적 범용성'을 강조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LG엔솔 관계자는 "LG엔솔 셀은 상온 25°C를 기준으로 영하 -20°C의 혹한부터 영상 60°C의 고온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고온·저온 환경에서 출력이 얼마만큼 나오는지 철저한 테스트를 거친다. 극한 환경에서 구동되는 기술력은 이미 고객사의 까다로운 스펙을 충족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별도의 전용 제품을 개발하지 않아도 기존 양산 셀의 성능만으로 가혹한 전장 환경의 요구치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SK온은 '신뢰'와 '안전'을 키워드로 전장에서 배터리의 가장 큰 약점인 화재 대응 기술을 선보였다. 비록 현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 우선 집중하고 있으며 대다수 기술이 양산 전 단계에 있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방산업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해 보였다.
가장 눈길을 끈 '액침냉각(Immersion Cooling)' 시스템은 절연 냉각유에 배터리를 직접 담가 화재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기술이다. 외부 충격이나 피탄 위험이 큰 장갑차 내 배터리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는 핵심 솔루션으로 평가받는다.
공간 효율을 극대화한 '대면적 냉각 기반 파우치형 셀투팩(CTP)' 기술 역시 모듈 단계를 생략해 부품을 줄임으로써 좁은 장비 내부에 최적화된 설계를 가능케 한다. 다만 SK온 관계자는 "공간 효율의 강점은 분명하나, 아직 양산 전 단계인 만큼 실제 적용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이상 징후를 30분 전에 감지하는 'EIS(전기화학 임피던스 분광법)' 기술이 돋보였다. 기존 기술이 사고 직전인 1~2분 전 알림에 그쳤던 것과 달리, 30분이라는 충분한 여유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SK온 관계자는 "현재 ESS를 중심으로 선보이는 기술이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이상 징후를 미리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은 데이터센터 셧다운 방지나 특수 작전 환경에서 확실한 이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인터배터리 어워즈를 수상한 에프디씨(FDC)의 '폭연방산구'는 배터리 설비의 폭발 전 압력을 신속히 배출하는 'ESS용 폭연방산구(Deflagration Panel)'를 선보이며 방산 인프라 안전의 해법을 제시했다.
이 장치의 핵심은 '무전원·물리적 구동'에 있다. 전기적 센서나 장치가 전혀 없어, 교전 중 전기 계통이 마비된 극한 상황에서도 내부 압력만으로 자동 작동한다. 특히 외부의 진동이나 폭발음 등 외부 충격에는 오작동하지 않고, 오직 배터리 내부의 이상 팽창 압력에만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현장 관계자는 "배터리 화재 시 발생하는 유증기가 폭발로 이어지기 전 압력을 외부로 빼내어 시스템 전체의 붕괴를 막는 기술"이라며 "이미 미국 방산업체들이 전력 공급용 ESS의 안전을 위해 이 기술을 채택하고 있을 만큼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대 최대 규모(14개국 667개사)로 치러진 이번 '인터배터리 2026'은 K-배터리가 단순한 부품 산업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했다.
엄기천 한국배터리산업협회장(포스코퓨처엠 사장)은 개막일 도어스태핑에서 "전기차 시장의 캐즘에도 불구하고 AI 데이터센터, ESS,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EV보다 더 크게 열리고 있다"며 "셀 제조사부터 소재·부품·장비까지 우리 생태계가 '원팀'이 되어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글로벌 주도권을 수호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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