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차화영 기자] 하나금융지주가 하나손해보험에 1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지원 방식이 눈길을 끈다. 하나금융은 앞서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수혈한 바 있는데 이번에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자 부담이 없는 유상증자와 달리 신종자본증권은 해마다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만큼 하나손보의 부담이 작지 않다. 하나금융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지주 사정뿐 아니라 올해 초부터 하나손보를 이끄는 배 사장을 향한 신뢰도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금융은 최근 하나손보에서 발행한 1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전량 인수했다. 이번 신종자본증권 금리가 10%대로 하나손보의 이자 부담이 작지 않지만 사실상 하나금융이 우회적으로 자금을 수혈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나손보로서는 외부 차입 없이 하나금융의 자금으로만 자본을 늘린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나손보의 신용등급을 고려할 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쪽이 이자 등 부담이 더 컸을 수도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채권인데도 만기가 보통 30년 이상으로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된다. 한국기업평가는 4월 기준으로 하나손해보험의 신종자본증권 신용등급을 'BBB, 안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하나손보 입장에서 하나금융의 자금 지원은 기회가 될 수도, 반대로 위기가 될 수도 있다. 당장은 지급여력비율(K-ICS) 상승 등 재무건전성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 하나손보의 부담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나손해보험의 신종자본증권 발행금리는 10.655%로 딱 봐도 높다. 연간이자만 10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나손해보험이 해마다 이자 이상의 수익을 보험사업 등을 통해 올리지 못한다면 하나금융의 지원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이 하나손보 지원 방식을 결정할 때 배 사장의 역량도 충분히 고려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화재 출신의 '영업 전문가' 배 사장이 보험사업 수익성을 충분히 개선할 것으로 봤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당초 하나금융이 하나손보에 이례적으로 외부 출신 사장을 선임한 이유도 그의 역량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하나손보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업계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말 배 사장을 내정하며 "손해보험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기획 및 영업 분야 등에서 전문 역량을 갖추고 있어 새롭게 하나손보를 이끌어 갈 적임자로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배 사장은 하나손보가 2020년 하나금융 품에 안긴 뒤 선임된 최초의 외부 출신이자 최초의 손해보험업계 출신 사장이다. 전임자인 권태균 사장이나 김재영 사장은 모두 하나은행 출신이었다.
하나금융이 하나손보의 이자 부담에도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한 이유를 두고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하나손보가 계속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유상증자로 무조건 자금을 넣는 데 부담이 컸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고 내년 하나손보의 잔여지분에 대한 콜옵션(주식매도청구권)이 발동되는 점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배 사장은 하나손보의 보험사업 수익성 개선을 끌어내야 하는 책임이 한층 막중해진 만큼 장기보장성보험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의 자금 지원으로 재무건전성 관리에서 한숨을 돌린 데다 자본 확대로 보험사업 확대를 위한 기반이 한결 좋아진 점은 배 사장에게 힘이 되는 요인이다.
하나손보의 보험 포트폴리오를 보면, 자동차보험 비중이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자동차보험 수익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새 국제회계제도(IFRS17)에서 장기보장성보험 판매를 늘리는 게 CSM(보험계약마진) 확보에도 유리하고 실적 개선에도 보탬이 된다.
배 사장은 올해 1월 취임사에서 "현재의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장기보험은 과감하고 빠른 성장에 집중하고 자동차보험은 손해율 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CSM은 보험사 회계기준이 IFRS17로 바뀌면서 새로 도입된 계정과목이다. 이전 IFRS4에서는 수입보험료가 주요 수익원이었지만 IFRS17에서는 CSM이 이익의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보험사는 계약시점에서 미래의 이익이 예상되는 부분을 부채, 즉 CSM으로 인식한 뒤 계약기간이 경과함에 따라 이를 상각해 이익으로 인식한다.
하나손보는 배 사장 취임 뒤 건강보험 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장기보장성보험 상품을 보다 확대했다. 최근에는 삼성화재, 메리츠화재 등의 '영업통' 임원을 영입하며 영업력을 한층 보강했다.
하나금융은 하나손보(옛 더케이손해보험)를 인수하며 디지털 보험사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지털 보험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해 하나손보는 우선 대면채널 중심으로 장기보장성보험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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