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승주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자재 공급망에 위협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선박 건조 공정에서 필수적인 에틸렌 공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당초 조선업계에는 해상운임 상승으로 인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탱커선 발주량 증가 등 전반적인 수혜가 예상됐으나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상황이 반전된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조선3사는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등 2022년 이후 수주한 고선가 물량의 인도가 본격화되며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구체적으로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연결기준 29조9332억원의 매출(전년비 17.2%)과 3조9045억원의 영업이익(172.3%)을 기록했다. 같은기간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도 각각 1조1091억원(366.2%), 8622억원(71.5%)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후 올해 2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고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시장에서는 조선업계의 수혜를 점쳤다. 전세계 원유 물동량의 20~25%가 지나는 핵심 수송로가 막히면서 해상운임이 상승했고 이는 곧 VLCC와 탱커선 발주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과거부터 반복돼온 지정학적 리스크가 다시 불거졌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다만 미국-이란 전쟁이 생각보다 장기화되면서 국내 조선사에게도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수입의존도가 70%에 달하는 국내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이 공장 가동률을 줄이는데 더해 연쇄적인 '포스 마주르(불가항력 사유로 계약 이행 불가)'까지 선언하고 있어서다. 현재 조선사들은 선박용 강재(후판) 절단과 용접에서 에틸렌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 에틸렌은 석유화학 공장에서 나프타를 원료로 생산된다.
선박의 건조 공정은 선체를 약 300여 개의 블록으로 나눠 제작한 후 이를 도크에서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꺼운 후판을 절단하고 용접하는 작업이 수 없이 반복되는 구조다. 조선사들은 에틸렌을 후판용 절단 가스로 사용하며 작업의 효율성을 제고한다. 실제 에틸렌은 액화석유가스(LPG)에 비해 화염 온도가 높고 아세틸렌보다 집중도, 안정성 측면에서 뛰어나 생산성을 크게 높여준다. 후판 절단면에 슬래그가 적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외 다른 석화 제품도 조선업계에겐 주요한 원자재다. 대표적으로 에틸렌을 통해 만들어지는 폴리에틸렌과 폴리염화비닐(PVC)은 선박 내 파이프와 배선, 절연재에 활용된다. 미국-이란 전쟁 장기화는 물론 친이란 성향의 예멘 후티 반군의 참여로 홍해까지 봉쇄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을 국내 조선업계가 주의깊게 살피는 이유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아직 공정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에틸렌 수급에 차질이 생기는 최악의 경우에는 공기 지연에 따른 위약금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상 선주사와의 선박 건조 계약을 맺으면 불가항력에 따른 인도 지연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소 3~4년치 일감을 쌓아놓은 조선업계에겐 현 상황이 달가울리 없다.
이에 업계도 정부와 선제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산업통상부는 이달 13일 조선업계와 긴급 수급 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같은달 15일 화학협회와 화상 협의를 주선해 에틸렌 단기 물량 공급 방안을 마련했다.
이와 관련 조선업계 관계자는 "에틸렌을 대체할 원자재는 있지만 수급에 차질을 빚을 경우 공기에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정부와 조선용 에틸렌 수급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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