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안위와 경제 주권을 지킬 전략 자산이자, 꺼져 가는 제조업에 다시 불을 지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전쟁의 골든타임을 사수할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낡은 규제를 걷어낸 '특구(特區)'에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테슬라 '옵티머스'와 맞붙을 현대차그룹 '아틀라스'부터 생존을 위해 로봇 기업으로 변신하는 부품사의 사투, IPO(기업공개)와 동반성장펀드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흐름까지 치열한 로봇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차 로보틱스랩을 이끄는 현동진 상무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새로운 '키맨'으로 부상했다. 현 상무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구상하는 로봇 모빌리티의 핵심 설계자인 동시에 단순한 기술 연구를 넘어 그룹의 제조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실증 책임자다. 특히 올해 CES에서 공개된 양산형 휴머노이드인 '3세대 아틀라스'로 미래 사업 경쟁력을 입증하며, 정 회장의 차세대 복심 입지를 굳히는 모습이다.
◆ 박사 출신 로봇통, 미래 모빌리티 아이콘 '부상'
1978년생인 현 상무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학교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UC 버클리)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 상무가 현대차그룹에 처음 발을 내디딘 것은 2008년으로, 차량 플랫폼 개발 조직의 연구원으로 1년간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 상무 이력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다시 학업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제어역학' 박사 과정을 밟은 그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생체 모방 로봇 연구소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특히 현 상무는 '웨어러블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마윤 카제루니 교수의 제자로, MIT에서는 사족보행 로봇 '치타'의 제어기술 개발에 참여하며 세계적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다.
공교롭게도 현 상무의 미국 유학 시기는 현대차그룹이 지능형 로봇 기술 개발에 본격 착수한 시점과 맞물린다. 현대차그룹은 각 계열사 로봇 핵심 인재들을 경기 의왕 중앙연구소 인간편의연구팀에 집결시켜 선행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2014년 한국으로 돌아온 현 상무는 현대차 인간편의연구팀으로 복귀했다. 가장 먼저 맡은 업무는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었는데, 현대차그룹은 현 상무 합류로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당초 목표보다 2년가량 앞당기는 성과를 거뒀다.
현 상무의 존재감은 2017년 열린 CES에서 확실하게 각인된 모습이다. 현대차 미디어 콘퍼런스에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직접 등장하며 기술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현 상무는 CES 2017 폐막 4개월 뒤 로보틱스팀장으로 임명됐으며, 2019년 말에는 로보틱스랩장으로 영전했다. 실질적인 성과도 내놨다. 현 상무는 2018년 무게를 지탱해주는 의자형 착용로봇을 북미 공장에 시범 적용한 데 이어 2019년 조끼형 착용로봇 '벡스'를 선보였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은 현 상무는 2020년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당시 40대 초반이던 현 상무의 승진은 현대차그룹의 세대교체와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더군다나 승진 타이밍이 현대차그룹의 미국 로봇 기업이던 보스턴다이나믹스(BD) 인수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현 상무의 미션은 한층 확고해졌다.
◆ 보스턴다이나믹스와의 기술 교류 주도…간접적으로 정 회장 승계 기여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로봇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 1월 개최된 'CES 2026'이다. BD가 주축이 돼 압도적인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술력을 과시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차그룹은 인간과 로봇이 협력하는 로보틱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AI 고도화로 인류 진보를 선도하는 'AI 로보틱스' 전략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처음 공개된 3세대 아틀라스는 오는 2028년부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투입될 예정이다. 아울러 현대차그룹 전시관에 차세대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의 상용화 모델과 산업용 착용로봇 '엑스블 숄더', 로봇 플랫폼 'H-Motion(H-모션)' 등도 전시했다.
현 상무는 BD와의 기술 교류를 주도하며 아틀라스 개발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아틀라스가 'CES 2026' 최고로봇상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CES에 출품된 휴머노이드 로봇 중 가장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배경에도 현 상무의 조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아틀라스는 글로벌 피지컬 AI 분야를 선도 중인 테슬라 '옵티머스'의 유력한 대항마로도 꼽히고 있다. BD의 하드웨어 제어력과 현대차그룹이 오랜 기간 쌓아온 제조 기술력에 더해 현 상무가 주도하는 AI 내재화가 결합되며 실질적인 기술 완성도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목할 부분은 현 상무의 기술 리더십이 간접적으로 오너가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이다. BD의 기술 완성도는 기업가치의 폭발적 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 회장의 승계 로드맵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기업가치는 약 1조2000억원 수준에 그쳤지만, 아틀라스 공개 이후 약 30조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5년 사이 기업가치가 25배나 껑충 뛴 것이다. 현재 정 회장의 BD 지분율은 22.6%로, 기 보유 중인 주식을 모두 매각한다고 가정하면 약 7조원의 현금을 손에 쥘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는 현 상무가 로보틱스랩을 이끌며 보여준 전문적 식견과 실무적 실행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및 로봇 경쟁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현 상무가 정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로봇 선행 연구를 넘어, 글로벌 생산 기지의 스마트화를 주도하는 '로보틱스 기술 사령탑'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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