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민기 산업1부장] 황혼이 짙게 깔리는 무렵, 저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나를 지켜주는 충직한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포악한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한 시간. 프랑스인들은 이를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 부른다. 2026년 봄,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라 불리는 삼성전자가 바로 이 경계의 시간에 서 있다.
삼성전자 노조라는 거대한 실루엣은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당초 삼상전자 노조의 등장은 건강한 견제와 균형, 그리고 선진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한 '파트너(개)'로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최근 이들이 보여주는 행보는 시장의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단순 임금교섭보다 '성과급 산식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지는 치킨게임에 가깝다. 파업권 확보, 4만명 규모 집회, 5월 21일 총파업 예고는 노조의 강한 신호다.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 탈환과 파운드리 2나노 공정 양산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에 터져 나온 '총파업' 카드는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포식자(늑대)'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삼성전자 노조는 과거 '현대자동차 노조'의 전철을 밟고 있다.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위기 상황마다 자기 몫 챙기기에 급급했던 현대차 노조는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귀족 노조', '국민 밉상 노조'라는 낙인이 찍혔다.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투쟁의 강도를 높이는 모습은 자본시장에 '삼성이 기술이 아닌 내부 갈등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최악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국민 기업으로서 쌓아온 신뢰가 '밉상'이라는 냉소로 변하는 순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된다. 대중은 '삼성 직원의 성과급 확대'보다 '국가 핵심 산업이 멈출 수 있다'는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모호한 실루엣을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진의 '리더십 실종'도 한몫하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황혼 속에서 등불을 켜야 할 경영진은 오히려 '관리'라는 이름의 침묵 뒤로 숨어버렸다. 성과급 산정 기준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거부하고, 구시대적인 보상 논리로 MZ세대 구성원들을 설득하려 한 것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왔다. 경영진이 확실한 비전과 보상 체계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구성원들은 생존을 위해 '늑대'의 이빨을 드러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삼성전자는 '관리'의 힘으로 성장해왔다. 치밀한 보상 체계와 효율적인 조직 운영은 삼성을 세계 1위로 올린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이 관리의 공식은 유효기간을 다했다. 성과급 산정 기준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MZ세대 중심의 노조원들에게 감성 호소나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불투명한 수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이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실무진 뒤에 숨어 '시간 벌기'식 협상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보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빅 딜(Big Deal)'을 단행해야 한다. 동시에 노조에게는 '국민 밉상'이 아닌 '상생의 파트너'로서 책임감을 가질 것을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보상과 자본 배치는 이사회와 경영진의 핵심 책무다.
이미 이재명 정부와 국회는 과도한 요구를 하는 노조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판이 깔아진 상황에서 경영진도 더이상 정치권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며 노조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지금의 사태는 단순한 '잉여 이익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시장이 삼성전자를 바라보는 우려의 핵심은 노조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사실보다 이번 결정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기업과 노사의 미래에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곧 지나간다. 안개가 걷혔을 때 삼성전자 앞에 나타날 실체가 충직한 파트너와 함께하는 새로운 도약일지, 아니면 내부 갈등이라는 늑대에게 먹혀버린 초라한 폐허일지는 전적으로 경영진의 결단에 달려 있다. 이 매듭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칼날은 경영진의 용기 있는 결단뿐이다. 관리의 틀을 깨고 나와,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일부 과격한 노조 집행부의 무리한 요구에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한다.
자본시장은 더 이상 삼성의 과거 영광을 믿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바로 전등을 켜고 실루엣의 정체를 확실히 규정해야 된다. 그것이 삼성전자가 맞이한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위기일 때 투자를 멈추지 말라'던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의 격언은 이제 설비가 아닌 '사람'과 '조직 문화'를 향해야 한다. 더 이상 늦어진다면 자본시장은 삼성의 초격차를 과거의 전설로만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이건희 회장의 뜻을 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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