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세연 기자] "규모가 큰 기업들은 오랜 친구를 만나러 오는 방문객이 3분의 1입니다. 중소·중견 기업들은 운 좋으면 신규 비즈니스로 확장하고, 영세한 업체들은 가격 진입장벽이 낮아 실질적인 계약까지 성사되는 구조입니다."
11일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세미콘 코리아 2026'을 찾은 한 기업 관계자는 현장을 한참 돌아다니다 이같이 말했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참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소통의 목적 자체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00여개의 부스가 들어섰지만, 기업 규모별로 부스 구성이 확연히 달랐다.
규모가 큰 기업들의 부스는 테이블만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존 VIP 고객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다. 지난해만 해도 여러 가지 브로셔를 비치한 기업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는 부스 내 스크린에만 제품 세부 사항을 띄우고 촬영만 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이었다. 웬만한 장비와 기술은 업계 관계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데다, 행사장에서 신규 고객을 확보해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이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 간 '만남의 장'이 되는 일이 많다. 한 기업 부스 관계자는 "브로셔를 만들 필요성 자체가 사라졌다. 원래 매번 제작했지만 올해부터는 아예 만들지 않기로 했다"며 "신규 고객사와의 수주 기회는 이런 행사에서는 잘 안 되고 예비 고객이 찾아와도 이야기만 나누다 흐지부지 되는 게 대다수"라고 말했다.
가끔 행사를 계기로 오래 기간 거래해 온 VIP 고객사들과 기존 사업에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부스 관계자는 "기존 VIP 고객사들에게 우리의 새로운 사업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며 "이럴 때는 실무진보다는 대표 등 경영진이 비즈니스 미팅에 참여해 직접 설득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중견 기업들은 신규 비즈니스를 발굴할 기회를 엿보는 분위기였다. 실제 신성이엔지는 비교적 작은 부스를 꾸렸음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방문이 잇따랐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고객 비중이 높은 편이다. 반도체 클린룸 사업 특성상 단가와 프로젝트 규모가 크고, 고객층이 매우 제한적임에도 관심이 이어졌다.
신성이엔지 관계자는 "과거에는 반도체 생산이 한국과 대만에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시도하려고 한다. 오늘도 해외 고객들의 관심이 높았다"며 "행사 첫날인데 벌써 미국 등 글로벌 고객사들의 계약 문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 반도체 부품 기업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엔드 유저와의 접점이 실제 사업 확대로 이어졌다. 엔드 유저 관계자들이 비용 절감이나 생산 효율화를 이유로 행사장에서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문의, 실제 공급 기회로 이어진 것이다. 이들 기업을 신규 고객사로 확보한 장비사가 찾아와, 엔드 유저가 사용해 온 부품이나 기술 도입을 검토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품 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새로운 공급처가 된 장비사에게 특정 협력사의 부품을 사용하라며 콕 집어 권하는 경우가 있다"며 "장비사에게 '협력사의 부품을 썼는데 성능이 좋으니, 해당 업체와 미팅을 잡아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장비에 적용해 보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요청한다"고 귀띔했다.
이에 장비사들이 협력사의 부스를 찾아, 이미 계약 가능성이 높은 상태로 구체적인 문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있다. 엔드 유저와의 거래를 염두에 두고 있는 업체들이 사전 탐색 차원에서 방문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부품 기업은 이 같은 효과를 경험해, 올해 부스 규모를 전년 대비 50% 확대했다. 비용 부담은 커졌지만 '남는 장사'라는 판단에서다.
규모가 작은 영세 업체들은 제품 가격이 낮아 신규 계약에 부담이 적어 방문객들의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반도체 장비 부품 업체 싸이노스는 대부분의 설비사들이 사용하는 공용 부품을 생산하는 만큼, 부스가 유난히 붐볐다. 행사장 곳곳에서 이 회사가 배포한 굿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참관객이 심심찮게 보였다.
'커스터마이징'까지 가능하면 더 인기가 많다. 현장을 찾은 다른 기업 관계자는 "같은 공용 부품이라도 너무 범용성을 띄면 부스에 잘 찾아오지 않는다. 어차피 일반적인 기술이기 때문"이라며 "적당히 커스터마이징까지 잘 하는 업체가 주목 받는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유통업이라 문턱이 낮은 반도체 중고 장비 도매업체 서플러스글로벌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이 회사의 부스는 줄곧 만석이었고, 옆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참관객도 적지 않았다. 서플러스글로벌 관계자는 "부스에 방문한 예비 고객사들이 투자 규모와 필요한 장비 목록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문의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지난해까지는 (업황 부진으로) 사업이 매우 어려웠지만 올해는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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