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술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희대의 궤변이 있다. 주가수익스와프(PRS)를 둘러싼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평가도 이와 비슷한 맥락 안에 있다. PRS의 본질은 부채이지만 회계상으로는 아직까지 자본으로 분류된다는 점 때문에 재무건전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지표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급증한 PRS를 둘러싼 혼란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활용 사례가 늘어난 가운데 회계처리가 미비한 때문으로 지적된다. 현재 국제회계기준(IFRS)에도 PRS 분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PRS는 대기업의 자사주나 자회사 주식 소유권을 증권사에 넘기는 대신 주식 가치의 상승 및 하락분은 기업에 귀속되는 계약이다. 보유하던 주식을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린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대부분의 경우 기업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을 되사는 조건을 덧붙여 PRS 계약을 맺는다. 보유 주식을 매각하지 않고도 현금을 확보할 일종의 주식담보대출인 셈이다. 증권사는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고 대신 대출이자 성격의 수수료를 받는다. 형식만 보면 파생상품 거래지만 사실상 차입거래와 유사하다.
시장에선 PRS가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환부 부채에 가깝다는 점을 문제의 본질로 인식한다. 만기가 도래할 경우 주가 변동분을 기업이 책임지고, 수수료(이자)도 고정적으로 납부한다는 점에서 경제적인 성격의 실질이 부채에 훨씬 가깝다는 해석이다.
에코프로그룹은 지난 10월 자회사 에코프로비엠 주식 약 5%(463만주)를 담보로 PRS 형식의 유동화 조달에 성공했다. 증권사 5곳과 8000억원 규모 PRS 계약을 체결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이 계약은 에코프로비엠 주식의 가격 변동에 따른 수익과 손실을 증권사와 교환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주가 상승하면 증권사가 기업에 차익을 지급하고, 하락하면 기업이 증권사의 손실을 보전하는 내용이다. 확보 자금은 인도네시아 투자 등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활용하려는 것으로 그동안 불거졌던 재무적인 불확실성을 극복했다는 평가다. 당시 회사 측은 에코프로비엠 주가방어를 위해 PRS 조달 추진 초기에는 주관 증권사들에는 '셀다운을 최대한 자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후 주가가 반전 상승세를 구가하자 일부를 매각해 서로 차익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PRS는 형식상은 진성매각에 가깝고 의결권·배당 권한까지 증권사로 넘어가지만, 주가가 반대로 하락기에 놓여 있고 기업이 재매입 의지가 강할수록 경제적 실질은 부채 성격에 수렴하는 리스크를 내포한다. 에코프로는 시장환경 변화의 덕을 톡톡히 봤지만 향후 다른 사례에서 재매입 시그널을 기업이 강하게 보냈다면 이는 회계상 자본으로 인식되는 현 구조와 충돌한다는 지적이다.
IB 관계자는 "기업이 상환 의지를 공식적으로 나타낸 거래를 자본으로 분류하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시장 내에서도 커지고 있다"며 "PRS를 통해 자본비율을 높이는 효과를 얻고도 실질 부담은 부채처럼 미루는 구조는 회계적으로 주주나 투자가들에 왜곡된 신호를 노출하는 결과를 낸다"고 말했다. 이런 때문인지 한국기업평가도 최근 보고서에서 "실질적인 상환 부담이 있다면 차입거래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유사한 특징을 지닌 신종자본증권이나 상환전환우선주(RCPS) 역시 회계상 자본으로 취급되지만 채무 성격을 반영해 자본인정비율을 산정한다.
PRS를 모호한 영역에 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재무 건전성 지표가 크게 왜곡된다는 것이다. PRS로 자금 조달을 한 기업의 부채비율은 실제보다 낮게 잡히기 때문이다. PRS가 회사채 발행 등 전통적 자금 조달 경로가 막힌 기업들이 주로 활용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부채 리스크가 과소계상 되는 문제다.
지난 7월 SK이노베이션의 신주를 기초자산으로 PRS 계약을 체결한 SK㈜ 거래가 대표적인 사례다. 3분기 말 기준 SK㈜의 별도 재무제표상의 부채비율은 77.4%이지만 관련 약정 금액 1조6000억원을 전액 부채로 간주하면 87.1%가 된다. 보수적 관점을 적용해 자본의 훼손으로 해석한다면 부채비율은 70%대가 아니라 90% 중반대까지 치솟는다.
PRS로 인해 회계적 투명성이 저해된다는 우려가 커지자 금융당국도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한국회계기준원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6월 증권사들에 PRS 회계처리에 관한 의견을 묻기도 했다.
다만 PRS를 무조건적으로 부채로 간주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계약의 세부 요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는 까닭이다. IB 관계자는 "만약 주식을 되사는 조건이 붙어있다면 주식담보대출과 유사한 부채로 볼 수 있다"면서도 "계약마다 권리와 의무가 다르기에 모든 PRS 구조와 거래 조건을 하나로 묶어 재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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