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노우진 기자] 내년 상반기 기업공개(IPO)를 결정한 HD현대로보틱스가 항해 시작부터 중복상장이라는 예상된 복병을 만났다. 올해 상장을 추진하던 여러 대기업 계열사를 좌초시킨 규제 리스크다.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은 다소 모호하고 해소방안 역시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 상장 난이도를 키울 것으로 예측된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는 HD현대로보틱스의 주관사 입찰을 준비하며 중복상장 리스크 해소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HD현대로보틱스는 앞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면서 상장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에 대해 주관사 후보들에게 제언해달라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역시 중복상장 논란을 염두에 둔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HD현대로보틱스는 2020년 5월 HD현대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설립됐다. 현재 HD현대(81.8%)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다. 매출 및 이익 기여도는 높지 않지만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로봇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중복상장 논란의 핵심은 모회사의 알짜 사업이 분할 상장하면서 모회사의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는 점에 있다. 이와 관련 HD현대로보틱스 측은 "IPO 추진과 관련 모회사 주주가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시장과 적극 소통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IB 업계 관계자는 "상장사의 계열사라면 모두 광의의 중복상장에 포함되고 특히 물적분할로 탄생한 기업이라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명문화된 가이드라인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일종의 감정싸움이나 다름없어서 주주들이 보기에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이 있다면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적 기여도가 미미하다는 건 모기업 주주들의 이익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지만 투자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중복상장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는 배경에는 가이드라인의 모호성이 자리 잡고 있다. 거래소가 심사를 위한 내부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정성적 평가에 치우친 까닭에 심사 통과의 가늠자로 삼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당시 거래소는 독립성과 투자자 보호 장치가 입증되면 상장을 허용한다는 원칙 하에 ▲지배구조 독립성 ▲이사회 구성 다양성 ▲특수관계인 거래 관리 ▲주주환원 계획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체적인 준거 수치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거래소 내부에서도 명확한 기준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이에 최근 가이드라인 제정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주요 증권사 실무진으로부터 업계 의견을 수렴해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조만간 예정된 코스닥 활성화 정책 발표 때 관련 계획을 밝힐 가능성이 있지만 가이드라인 내 세칙까지 공개하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복상장의 정의를 확실히 하고 기준을 세워야 하는데, 지배구조와 사업현황, 주주 이해관계 등이 케이스마다 상이한 탓에 일률적인 잣대를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HD현대로보틱스 주관사를 노리는 주요 증권사는 제안서 작성 단계에서는 내부 가이드라인만 참고한다는 입장이다. RFP를 수신한 한 증권사 실무진은 "거래소가 가이드라인 신설을 위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지만 따로 전달받은 건 없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무슨 내용이 논의되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알 수 없기에 주요 변수로 두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모기업이 얼마나 강력한 주주 환원 의지를 내비치는 지가 관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령 티엠씨의 경우 케이피에프가 여러 주주환원책을 제시하면서 논란을 넘어 증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케이피에프는 일반 주주에게 티엠씨 주식을 현물배당(보통주 31주당 1주)하기로 했으며 보유한 자사주 절반은 소각하고 나머지 절반은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하기로 약속했다. 또 배당성향을 20%로 상향 조절했고 향후 5년간 20~25% 수준의 배당정책도 유지하기로 했다. 거래소의 내부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한 투자자 보호 장치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선례가 생긴 만큼 HD현대로보틱스에도 비슷한 잣대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IB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는 시장을 살필 수밖에 없기에 주주들의 반응에 따라 태도도 달라질 수 있다"며 "중복상장 문제는 주주들의 마음을 얻는지 아니면 미움을 사는지에 달린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기업이 주주들의 몫으로 어느 정도를 내놓는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HD현대로보틱스는 이달 초 본격적으로 상장 절차에 착수했다. 국내외 주요 증권사에 RFP를 발송했고 연내 구술심사(PT)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HD현대로보틱스는 최근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에서 1조8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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