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배지원 기자] 기업 자금조달 시장이 급속히 재편되면서 몇 년 전만 해도 활용이 미미했던 신종 구조화 상품 주가주식스와프(PRS)가 핵심 대안으로 부상했다. 시장 규모는 3년 전 대비 약 100배 확대됐고, 대기업 다수가 PRS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공모 시장에서 PRS 방식으로 조달된 금액은 7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2조원), 롯데케미칼(6600억원), 한화솔루션(5000억원), 효성화학(3965억원)이 이미 거래를 마쳤고, 에코프로(8000억원), LG화학(2조원)도 같은 구조를 택했다. 자회사 지분을 기초자산으로 설정해 현금을 확보하는 방식이 주력 그룹 전반으로 확산된 모습이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국내 PRS 발행 잔액은 10조8598억원이다. 3년 전만 해도 약 1000억원 규모로 발행된 데 비해 100배나 몸집이 커진 셈이다.
PRS가 단기간에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규제 환경 변화가 자리한다. 금융감독원은 올 2월부터 유상증자 심사를 한층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무분별한 자본 확충을 줄이고 기존 주주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기업 입장에서 운전자금, 사업 투자 등 당장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통로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유상증자는 통상 부채나 메자닌을 소진한 기업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져 왔는데 심사 강화로 활용 부담이 더 커졌고 이 공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PRS가 급부상했다는 설명이다.
시장의 대외환경적인 변화 요인도 크다. 석유화학이나 2차전지 등 주요 산업은 업황 반등이 제한되면서 재무지표가 약화돼 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이 커졌다. 회사채 발행 여건 역시 악화돼 일반적인 조달 수단이 막히자 PRS가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 받는다. 대규모 블록딜이나 장내매각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주가 하락이나 지분율 희석 부담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기업이 PRS를 선택하는 이유로 꼽힌다.
다만 구조적 리스크도 만만찮다는 지적이다. PRS는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확대된 지 오래되지 않은 상품으로, 기업·증권사별 공시 기준이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시장 규모와 개별 증권사의 익스포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잠재적 위험이 누적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사주 담보 가치가 급락하거나 특정 그룹 거래가 집중될 경우 유동성 압박이 증권사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취약한 구간은 주가가 하락할 때다. PRS는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되사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장 가격이 약정가를 크게 하회하면 재무 부담이 급증한다. 자금 여력이 악화된 조건에서는 약정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지분이 외부로 넘어가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이 원하는 타이밍이나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기 어렵다는 점도 또 다른 제약으로 꼽힌다. IB 관계자는 "PRS 약정 구조상 회수 시점과 방식이 고정돼 있어 자사주 소각이나 지배력 확보, 계열사 지분 관리 등 주가 변동에 따른 전략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회계 처리 역시 쟁점이다. PRS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겉으로는 자사주를 매각하지 않고도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기업이 PRS를 선호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사각지대가 PRS 발행 확대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PRS 시장이 단기간에 급팽창한 만큼 제도적 보완과 위험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금조달 수요를 충족시키는 신종 금융기법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공시·익스포저 관리·유동성 리스크의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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