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박준식 자본시장부 부국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지난 2018년 4월 30일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15년 5월 수백억 원대 회삿돈 횡령 및 원정도박 혐의로 구속돼 징역 3년 6개월 확정 판결을 받은 지 3년 만이었다. 형기를 6개월 남겨두고 가석방 대상에 포함돼 사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출소 후 5년 간 취업 제한 규정을 적용받았다. 하지만 2022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제한이 해제됐고 2023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과거 쌍용그룹 김석원 전 회장 등과 함께 칠공자로 불렸던 장 회장은 잘생긴 용모로 유명했다. 그러나 출소한 그는 백발이 성성했다.
창업주 장경호 회장의 손자이자 장상태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철강왕 피를 이어받은 장세주 회장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 중앙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50년대 초반생인데도 불구하고 장 회장은 미국 타우슨 대학에서 경제학을 수학한 그 세대 보기드문 유학파다.
1978년 동국제강에 사원으로 입사해 20년 넘게 생산 현장과 일본 지사를 돌며 철저히 경영 수업을 받았다. 1996년 조선업의 원자재가 되는 후판 공장을 설립한 것은 8할이 그의 성과로 기록돼 있다. 2001년부터 회장으로 취임해 매출을 크게 늘렸고 브라질에 제철소도 세웠다.
그러나 경영 만으론 도파민이 채워지지 않았던 탓일까. 실제 호걸의 삶을 살았던 그는 현대에는 용납되지 않는 잡기(雜技)의 문제로 커리어에 흠결을 남겼다. 게다가 경영을 비운 사이 그룹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여러 자산이 그 구조조정 시기에 떨어져 나갔다.
가장 뼈아팠던 매물은 서울 중구 을지로 사옥인 페럼타워다. 선친의 당부가 분명했던 그룹 토대라 가문 모두가 매각을 애석해 했다. 실제 장상태 전 명예회장은 1974년 청계초등학교였던 이 부지를 어렵게 매입해 수하동 시대를 열었고 자손들에 수성을 유지로 남겼다 전해진다.
이런저런 곡절 때문일까. 장세주 회장은 지난해 7월 페럼타워를 매각한 지 10년 만에 재매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2015년 4200억원에 팔았던 건물을 6451억원에 다시 샀는데, 삼성생명보험과 그 산하 자산운용이 가문 사이의 배려로 우선매수권을 준 덕분으로 전해졌다.
한국 나이로 일흔 셋에 장세주 회장은 그렇게 영욕의 대상을 되찾은 것으로 보인다. 경영자 개인으로서는 숙원을 풀어낸 사건이다. 하지만 가문의 설욕과는 별개로 그룹의 재무적인 문제는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계약금 등 2200억원 외에 나머지 전부가 부채여서다.
문제는 본업이다. 철강업이 미국의 관세 위협과 실질적인 무역장벽, 중국의 저가공세로 수익성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동국제강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비 42%나 줄어 600억원을 넘지 못했고, 동국씨엠은 순손실 287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지주사라고 다를 리 없다.
결국 그룹의 토대를 되찾은 소식 이후 반년 여 만에 지주사 동국홀딩스는 자본재편을 공표했다. 그런데 무상감자와 자사주 소각으로 자본금을 2711억원에서 778억원으로 오히려 줄여 배당 가능액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재무개선과 주주환원 프레임인데 뭔가 이상하다.
난데없이 지주사 자본을 갑자기 2000억원이나 줄이려는 본래의 목적을 회사 발표대로 데이터센터 투자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 본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와중에 신사업을 하려면 유보금이나 그를 레버리지로 차입을 해서 직접 투자하면 되는데 자본을 오히려 줄이다니.
이런 경우 지주사 자본을 줄이는 이유는 보통 세가지다. 자본이익률(ROE)을 인위적으로 개선하려는 의도이거나, 잉여자본을 축소해 배당 가능 재원을 정리하는 것, 그리고 자회사 배당을 통해 차입 상환 구조를 만들려는 전작이다. 지주사 슬림화와 재무지표 관리 의도다.
만약 순수하지 않은 오너가의 꿈수라면 지배주주의 현금 확보도 무시 못할 동인이다. 동국홀딩스 최대주주는 장세주 회장(32.54%) 등 특수관계인들인데 지분율이 63%에 달한다. 배당이 이익잉여금에서만 가능한 걸 고려하면 지분율은 유지하면서 현금을 빼려는 구조가 된다.
실제로 페럼타워를 재인수한 그룹은 세가지 부담을 안았다. 4200억원의 차입부담이 실제적이고, 금리환경은 4%대에서 본업 이익률보다 높은 상태이며, 지주사의 현금흐름 압박이 가중되고 있던 것이다. 이런 원인들이 지주사 차원의 현금 재배치를 요구했다는 해석이다.
일각에선 장 회장이 장세욱 부회장과 장선익 전무에 승계를 예비하고 자본을 정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감자 그 자체는 의제배당으로 과세대상이라 이를 상속재원으로 쓰면 이중과세를 유발하게 된다. 그래서 상속보단 승계 이전 정리단계란 해석이 더 타당하다.
문득 이런 관점에서 보니 장세주 회장은 어쩌면 경영에 복귀해 자신을 용서하며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준비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3세 경영인으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후회없는 유산들을 가문에 최대한 남기기 위해 다시 경영에 절치부심 천착하는 집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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