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모험자본의 역할이 커지며 벤처투자 시장에도 새로운 기대가 모이고 있다. 다만 시장의 마중물이 되는 출자 규모가 확대될수록 대형 운용사로의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책·민간자금 유치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운용자금을 총괄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의 존재감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유력 벤처캐피탈리스트를 조명한다.
[딜사이트 이준우 기자] 안재광 SBI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벤처캐피탈(VC) 업계에 입문하고 이 하우스 한 곳에서 줄곧 몸담아온 이른바 원클럽맨이다. 안 대표는 2010년 SBI의 전신 한국기술투자(KTIC)에 투자 심사역으로 합류해 본부장을 거쳐 대표직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홍보 분야에서 업종을 바꾸며 VC 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KTIC의 마지막과 일본SBI의 인수 과정 등을 모두 지켜본 하우스의 산 증인으로 평가된다.
1977년생인 안 대표는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국내 1위 대기업 삼성전자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홍보팀에서 해외 홍보와 모바일 마케팅을 담당하며 DX 부문에서 지식을 쌓았다.
VC 업계에 발을 들인 것은 2010년 과거 KTB네트워크(현 우리벤처파트너스)와 양대산맥이던 KTIC(현 SBI인베스트)에 합류하면서다. 벤처 투자와는 전혀 다른 직종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뛰어난 투자 성과로 조직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가 강점을 보인 분야는 정보기술(IT)이나 모바일이 아닌 바이오·헬스케어다. 대표적인 그의 포트폴리오로는 리가켐바이오, 큐리언트, 신라젠, 유바이오로직스 등이 있다. 전공인 모바일·콘텐츠 분야에서도 하이브, 위지윅스튜디오 등을 발굴해 성공적으로 투자를 이끌었다.
안재광 대표는 입사 10년 만에 벤처투자2본부장을 꿰찼고 2년 만에 공동 대표로 직행했다. 서강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해 운용자산(AUM) 1조원이 넘는 대형 하우스를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해 3월 단독 대표로 선임되며 일본SBI로부터 신임을 재확인했다. SBI는 2022년 150억원의 손실을 냈지만 안재광 체제로 전환된 이후로는 줄곧 흑자를 내고 있다.
그가 하우스에서 경영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번듯한 커리어와는 달리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다. SBI의 전신인 KTIC가 일본SBI에 인수되고 모회사가 간섭하는 과정에서 우수한 인력들이 이탈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 VC KTIC는 일본SBI가 인수하기 전까지 개인이 운영하는 회사였다. 당시 오너는 투자 심사역들에게 리스크 높은 무리한 투자나 펀드 운용을 요구하면서 매년 성과와 부진이 극명하게 갈리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결국 2009년 709억원의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10년 807억원의 횡령 사실이 밝혀지며 KTIC는 무너졌다. 이후 일본SBI가 국내 자회사 SBI코리아홀딩스를 통해 현재의 SBI를 재구성했다.
SBI로 사명이 변경된 이후 일본SBI 측에서 다까하시 요시미 회장이 부임했다. 일본 사람이었지만 한국에서 오랜 기간 거주해 한국어가 유창하고 운용 인력들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리더였다. 하지만 다까하시 회장은 갑작스레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고 일본SBI 측이 직접 경영에 나서며 직원들은 극심한 업무 부담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특유의 보수적인 문화가 주입되며 인력 통제, 일본어 직역 등 불필요한 간섭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까하시 회장은 일본SBI에서 꽤 높은 자리에 있던 인물인데 모회사 측이 경쟁자 제거를 목적으로 수백억원대 부당지출 명목으로 대표직을 박탈했다는 후문이 나온다.
안재광 대표는 일본SBI의 과도한 간섭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던 선후배들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버티며 다음을 기다렸다. 단독 대표이사에 오르기까지 까다로운 일본 주주들의 신임을 얻은 노력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일본SBI가 그를 우호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일부 지적도 나온다. 반대로 대표로의 재직기간이 길어 그가 하우스를 오래 이끌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VC 관계자는 "일본SBI 측이 실제로 안 대표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하우스를 안정적으로 잘 이끌고 있다"며 "SBI는 대표 이사 재직 기간이 비교적 길어 당분간 안 대표가 SBI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SBI의 자국 투자 규모가 미미한 탓에 과거 국내 하우스 내부에서는 의아한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대형 VC로 인식되며 국내 법인을 진두지휘했던 모회사가 정작 고향에서는 한국 시장 대비 극히 제한된 수준의 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일본SBI는 한국을 비롯한 홍콩, 동남아 등 복수의 해외 거점에서는 안착했으나 일본에서는 벤처투자 시장이 작은 탓에 사업 규모를 키우지 못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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