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김기령 기자] 배가 작은 강을 건널 때는 노 젓는 팔 힘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양에 나서는 함선에선 선체를 지탱하는 용골과 항해도를 읽는 눈이 운명을 가른다.
벤처캐피탈(VC) 운용사 TS인베스트먼트 지휘봉을 잡은 이동현 대표는 4일 "취임 후 가장 먼저 단행한 조치는 투자가 아닌 미들·백오피스의 강화"라며 "이제는 개인의 눈이 닿지 않는 영역까지 회사가 조직의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TS인베 합류하기 전까지 2020년부터 5년간 신한벤처투자를 이끌며 금융지주계열 VC 하우스 가운데 가장 잡음 없는 조직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던 그는 역시나 화려한 투자 성공사례보다는 하우스의 체질 개선과 조직론에 대해 역설했다. 이동현 대표가 그리는 이른바 TS 2.0의 청사진은 단순히 자산 규모를 키우는 것을 넘어 완성형 VC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동현 대표는 "TS인베가 지난 19년 동안 별도의 지주사나 대주주의 자금 지원 없이도 오로지 투자역들의 실력만으로 운용자산(AUM) 1조3000억원을 달성한 것은 분명한 성과"라면서도 "1조원이 넘는 규모를 이제 프론트맨들의 개인 역량으로만 커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수준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 벤처투자 시장은 이제 양적 팽창의 시대를 넘어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다. 400여개가 넘은 VC 하우스들은 한국이라는 좁은 나라에서 서로 무한경쟁을 벌이며 지속 가능성을 의심받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심사역 개개인의 역량에 기대던 시대를 지나 체계적인 시스템과 조직의 힘으로 승부해야 하는 대형화의 길목에서 전문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동현 대표는 "투자가 공격이라면 관리는 수비이고, 성장의 과실을 지키기 위해서는 뒤가 단단해야 한다"며 "현재 7명 규모인 미들·백오피스 인력을 조만간 2~3명 추가 충원해 펀드 관리와 리스크 제어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것을 TS 2.0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6명 수준인 벤처 투자 인력을 연내 9~10명까지 늘리되 딥테크와 바이오 분야 전문가를 최우선으로 보강할 것"이라며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성을 극대화해 출자자(LP)들이 신뢰할 수 있는 '색깔 있는 펀드'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심사역 개인의 명성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나 전문 분야별로 고도화된 팀 체계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다.
TS 2.0의 핵심은 인수합병(M&A)과 초기 투자의 균형이다. TS인베는 그간 M&A 주목적 펀드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여왔다. 지난 한 달 여간 현황을 보고 받은 이동현 대표는 이 강점을 VC 본연의 색깔과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최근 TS는 설립 이래 최초로 스케일업 팁스(TIPS) 운용사에 선정됐다. 향후 액셀러레이터(AC) 자회사인 뉴패러다임인베스트먼트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이번 스케일업 팁스 운용사 선정을 통해 그동안 분절돼 있던 투자 단계를 하나의 유기적인 밸류체인으로 묶을 구상도 갖고 있다. 이동현 대표는 이에 대해 "특정 영역의 전문성만 고집하는 것은 하우스 규모가 작을 때 적용되는 이야기"라며 규모 확장의 의지도 분명히 했다.
포트폴리오 운용 방향에 대해서는 "바이오와 딥테크(소부장) 분야를 50% 이상으로 유지해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깔고 나머지 50%는 AX(AI 전환), 피지컬 AI, 로봇 등 시대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출 것"이라며 "과거 네오플럭스(현 신한벤처투자) 시절에도 조합마다 스테이지와 분야 비중을 표로 정리해 투심위 위원들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보고 의사결정하도록 시스템화 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동현 대표의 조직철학은 그의 오랜 경험과 연구에서 비롯됐다. 그는 VC의 조직 구조와 시스템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쓴 학구파 경영자이기도 하다. 이동현 대표는 "과거 후배들로부터 '형은 왜 투자하러 다니지 않고 혼자서 공부하면서 자꾸 팀과 시스템을 얘기를 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며 "하지만 이제 조직철학은 VC 생태계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시대의 흐름이 됐다"고 설명했다.
민간 LP 중심으로 전환되는 벤처 생태계에 대해서는 훨씬 더 까다로운 옥석가리기가 시작될 거란 전망을 내놨다. 그는 "시장에서 민간 투자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출자 목적이 다양해진다는 의미"라며 "운용사는 그들의 니즈를 맞추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성과로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만약 주어진 수익률 등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시장은 과거의 퇴행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벤처캐피탈이 양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이 생태계에서 어떤 사회적·철학적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대표는 첫 해 목표로 성장을 위한 진용을 완성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함과 시스템의 단단함을 결합해 이 하우스가 단순한 투자사를 넘어 벤처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핵심 파트너가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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