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한진리 기자] 국내 2위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에서 발생한 대규모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가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 논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사고 규모가 수십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단순 전산 오류를 넘어 시스템·내부통제 전반에 대한 점검 필요성이 부각됐다는 점에서 정책적 파장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번 사고로 비은행 사업자인 가상자산거래소의 내부통제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금융위원회의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을 비롯해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를 둘러싼 한국은행의 '은행 주도 51%룰' 주장에도 전례 없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스테이블코인 규율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여당안 발의를 위한 절충 작업에 들어갔다. 금융당국 역시 정부·여당 단일안이 도출되는 대로 입법 절차에 속도를 내 3월 중 처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당정 간 세부 이견이 여전히 남아 있어 처리 시점은 유동적이다.
이번 입법 과정의 핵심 쟁점은 ▲은행 주도 컨소시엄(51%룰)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제한이다. 먼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은행 중심 컨소시엄(지분 50%+1 이상)으로 제한하는 방안은 한국은행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사안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지급결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금융시스템 안정성 등을 위해 은행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여당은 핀테크·간편결제 등 비은행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최근 빗썸에서 약 6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가 발생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실제 손실 확정 규모와 별개로, 일시적으로라도 대규모 수치가 시스템상 반영됐다는 점 자체가 리스크 관리 체계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업계 2위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중대한 내부통제 결함이 드러난 만큼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이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파급력이 훨씬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은행이 강조해온 고도화된 리스크 통제 체계 필요성에 정책적 무게가 실릴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쟁점인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율 제한은 금융위원회가 핵심 과제로 제시해 온 사안이다. 가상자산거래소를 제도권 인가 체계로 편입하는 것을 고려해 지배구조를 금융회사 수준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자본시장법상 대체거래소에 적용되는 최대주주 지분 한도(15%)를 적용해 15~20% 범위에서 상한을 설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현행 자본시장법 체계와의 정합성, 기존 사업자의 기득권 침해 여부 등 법리적 쟁점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 월례 간담회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제정되면 거래소는 인가를 통해 법적 지위와 책임이 강화된다"며 "이에 걸맞은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거래소에 대해 은행권에 준하는 내부통제·지배구조 요건이 요구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금융회사와 동일한 수준의 규율을 일괄 적용할 경우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 같은 지분 규제가 현실화될 경우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의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두나무의 경우 송치형 회장이 25.52%를 보유하고 있으며, 빗썸은 빗썸홀딩스가 73.56%, 코빗은 NXC가 60.5%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15~20% 상한이 적용되면 상당한 지분 정리가 불가피하다.
특히 최대주주 지분 매각 시 경영권 프리미엄 훼손, 외부 자본 유입에 따른 지배력 분산 등 부수 효과도 뒤따를 수 있다. 이 경우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 간 합병에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최종 여당안이 금융당국의 바람대로 확정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빗썸 사태가 규제 강화의 명분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비은행 사업자 육성 기조를 전면 수정하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 정책 목표인 금융안정과 산업 육성 간 균형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입법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와 거래소 지분 규제의 수위는 향후 입법 과정에서 다시 조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빗썸 사고로 내부통제 문제가 법안 설계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며 "비은행 사업자의 시장 참여 자체가 봉쇄되지는 않겠지만, 규제 요건이 강화될 경우 은행 컨소시엄에 편입되지 못하는 곳은 원활한 진입과 안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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