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안위와 경제 주권을 지킬 전략 자산이자, 꺼져 가는 제조업에 다시 불을 지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 전쟁의 골든타임을 사수할 마지막 승부수는 결국 낡은 규제를 걷어낸 '특구(特區)'에 있다. 이에 딜사이트는 테슬라 '옵티머스'와 맞붙을 현대차그룹 '아틀라스'부터 생존을 위해 로봇 기업으로 변신하는 부품사의 사투, IPO(기업공개)와 동반성장펀드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흐름까지 치열한 로봇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 본다. [편집자주]
[딜사이트 이세정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전북 새만금 일대에 미래 신사업 클러스터 조성을 추진하면서 로봇특구 지정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번 투자는 고(故) 정주영 창업주가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충남 서산 간척지를 개척한 '도전의 역사'를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새만금에서 미래 기술로 계승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할아버지가 일군 간척지 위에 손자가 로봇과 모빌리티라는 신성장 동력을 심으며 현대가(家)의 개척 정신을 완성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 새만금에 미래 모빌리티 클러스터 조성…지역균형개발 일조
정부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조만간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관계 부처와 전북 새만금 지역 투자를 골자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세부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약 10조원을 투자해 로봇 생산시설과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수소 설비 등을 구축하고 3대 사업의 핵심 축을 세운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의 이 같은 투자 계획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역대 최대 규모의 국내 투자와 맞닿아 있다. 그룹은 2030년까지 국내에서 역대 최대 규모인 12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지난 5년(2021~2025년)간 투자액 89조1000억원보다 40.3%(36조1000억원) 증액된 숫자다. 투자액의 약 40%에 달하는 50조5000억원은 로보틱스와 AI,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동화, 수소 분야에 쓰일 예정이다.
정 회장은 1년 전부터 신사업 투자처로 새만금을 유력하게 검토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5월 새만금개발청과 스마트 모빌리티 시티 구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동남권의 경우 일찍이 국내 제조업과 물류 요충지로서 기반을 다져왔다. 반면 서남권은 지역개발에서 비교적 소외돼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 개발을 결정한 주된 배경에는 이재명 정부의 '5극3특' 균형성장 정책에 기여하기 위한 의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을 목표로 5극 초광역권(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과 3특(제주·전북·강원) 실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이 '로봇 밸류체인 구축'을 명분으로 국민성장펀드 지원 필요성을 피력한 점은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최측근 인사를 국민성장펀드 태스크포스팀(TFT)과 접촉시킨 정 회장은 로봇 생태계 조성과 협력사 동반성장을 약속했다. 또 정 회장은 지난해 10월 이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내용에 합의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국가에 신세를 꼭 갚겠다"며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 정주영이 만든 땅, 정의선의 미래사업 '토대' 됐다…로봇 실증사업 '최적'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일대에 조성된 총 409㎢ 규모의 간척지인 새만금은 1991년 11월 착공해 2010년 준공했다. 애초 새만금은 국제 규모의 항만과 공항, 첨단기술 산업단지, 물류단지 등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권의 중심지를 목표로 했지만, 활성화 성과는 정체된 상황이다.
특히 새만금은 정 창업주가 주도한 충남 서산 간척사업에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남다르다. 정 창업주는 1970년대 후반 중동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재고로 쌓여가는 건설장비를 활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이 시기 한국은 농경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정 창업주는 "좁은 국토를 한 뼘이라도 더 늘려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도, 기업 경영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나라를 살찌게 하는 일 못지 않게 보람 있고 중요한 일"이라며 대규모 간척지 조성에 뛰어들었다.
정 창업주는 1984년 서산 간척지 공사 당시 거센 물살로 물막이 공사가 어렵게 되자 고철로 쓰기 위해 울산에 정박시킨 폐유조선을 침몰시켜 물의 흐름을 늦추는데 성공시켰다. 일명 '정주영 공법'으로 불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유조선 공법이 탄생한 것은 물론, 정 창업주의 도전 정신과 개척 정신은 범현대그룹 성장의 근간이 됐다.
정 창업주의 신념과 실행력은 손자인 정 회장에게 이어졌다.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부지의 새만금은 로봇과 자율주행, SDV 등 미래 모빌리티 실증사업을 전개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예컨대 새만금은 인구 밀집도가 낮은 대신 부지가 광활하고 일조량이 풍부해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적합하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올 초 언급한 국내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와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 설립지로 유력하게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물류 로봇의 대규모 실증이 가능한 지형적 이점도 갖추고 있어 현대차그룹 로봇 계열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술력이 대거 이식되는 전초기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은 재생에너지 확보가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수소 생산과 저장 설비를 짓고, 데이터센터 뿐 아니라 로봇 공장을 탄소 배출 없는 '그린 수소' 생산 기반으로 조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현대차그룹의 로봇특구 조성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맞물려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새만금개발청 업무보고에서 속도감 있는 새만금 개발을 당부했다. 이에 맞춰 정부는 투자진흥지구 세제 혜택 적용 기간을 오는 2028년까지 연장했다. 또 입주 기업에는 3년간 법인세 100%, 이후 2년간 50% 감면 혜택을 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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