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방태식 기자] "이 상태로 약가가 내려가면 국산 원료의약품 업체는 다 죽습니다."
최근 만난 한 원료의약품 업체 대표는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올 하반기부터 복제약(제네릭)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원료의약품 업계에 피해가 불 보듯 뻔하다는 주장이다. 제약사 '옥석 가리기'와 건강보험 재정 완화라는 약가 인하의 취지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다만 그 여파가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었는지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네릭 약가가 내려가면 제약사의 선택지는 단순해진다. 수익성 방어를 위해 원가를 줄여야 하고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이 원료다. 국산 원료의약품은 인도·중국산 대비 30%에서 많게는 2배 가까이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물가부터 인건비까지 각종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더러 생산 규모 측면에서도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단순히 산업 차원의 이야기로 국한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급망 안정성과 더불어 보건 안보와도 직결된 문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산 원료 수급이 막히면서 일부 필수의약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기억은 업계 전반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국산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4년 기준 31.4%에 그쳤다. 이는 바이오시밀러를 비롯한 바이오의약품 원료까지 포함한 수치로 제네릭 중심의 화학의약품으로 좁히면 체감 자급률은 20%대 초반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향후 팬데믹 주기가 점차 짧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옴에도 국산 원료 자급률은 진전이 없는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가 인하가 현실화하면 이 흐름은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일부 제약사들이 원료 업체를 상대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이미 수입원료 대비 가격 경쟁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국산 원료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약가 인하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정부도 원료의약품 자급률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원료의약품 산업 지원 예산으로 157억원을 신규 편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다만 여러 기업에 나눠 분배되는 구조인 만큼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또 국가필수약에 한해 국산 원료 사용 시 약가 인하를 우대하는 기존 제도 역시 해당 치료제의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탓에 효용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원료 업계가 요구하는 대안은 단순하다. 필수의약품에 국한하지 말고 전문의약품 전반으로 범위를 넓혀 국산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국산 원료 자급률이 30%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부담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약가 인하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국산 원료 산업이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하지 않은 채 가격부터 깎는 정책은 또 다른 취약 지점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약가 인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국산 원료가 뒷순위로 밀려난다면 그 비용은 언젠가 다른 형태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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