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 이우찬 차장] 석유화학산업의 지금은 비극이 분명하다. 늘 겪는, 기다리면 끝이 오는 산업의 사이클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국발 과잉공급에서 비롯된 구조적 불황이다. 오일머니를 쥐고 있는 중동은 국내를 테스트베드 삼아 에틸렌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사우디 아람코가 최대주주인 외국계기업 에쓰오일의 '샤힌'이 대표적이다. 울산에 NCC를 보유하고 있는 SK지오센트릭(66만톤)과 대한유화(90만톤)를 합친 것보다 많은 180만톤의 에틸렌이 내년 같은 곳에서 생산된다.
석유화학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생산하며 주요 수출산업으로 기능했다. 잘 나갈 때 각 그룹의 캐시카우 구실도 했다. 가정을 건사했고 자식 여럿 키웠다. 국내 1위 석유화학기업 LG화학도 그렇다. 석유화학에서 벌어들인 현금으로 미래 사업 투자를 거듭했다.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바이오를 일궈왔다. 지금은 시장에 내놓은 NCC 설비가 팔리지 않아 구조조정의 객체가 돼버렸다. 비극의 주인공이다.
배당 잔치로 시끄러운 기업도 있다.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이 50%씩 지분을 들고 있는 여천NCC다. 배당금이 통장에 꼬박꼬박 꽂힐 때에는 몰랐다. 위기의 징후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말이다. 1999년 설립 이후 누적 배당금은 4조4300억원에 달했다. 한화와 DL 2조원 이상씩 배당을 챙겼다는 뜻이다. 여천NCC 성장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게 문제다.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2019~2021년 연간 기준 매출 대비 0.1%만 연구비에 썼다.
정부가 지난주 석유화학 구조조정 개편안을 발표했다. NCC 설비 최대 370만톤 감축이라는 목표를 밝히고 연말까지 기업별로 개편안을 제출하라는 데드라인을 정한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주주의 자구책이 필요하고 선별지원 원칙으로 무임승차 하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닌 도려내는 외과 수술이 절실하다. 경쟁력을 상실한 부분은 포기하고 키울 것은 키워야 한다. 범용 제품 축소와 스페셜티 육성이다. 국내 조선업 부흥이라는 생생한 경험이 있다. 중형 조선사는 유조선·특수선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대형 조선사는 고부가가치의 LNG선 확대에 몰두하며 난관을 돌파했다. 민간 선박 건조량에서 중국에 밀리지만 고품질·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에 방점을 찍으며 조선업은 부흥기를 맞고 있다. 특히 한미 관세협상 과정에서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의 중추로 올라선 것도 고무적이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에서 필요한 것은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를 경계하는 일이다. 침묵하고 소극적으로 움직이면 생존할 수 있다는 버티기는 안될 일이다. 정부는 기업들의 자구책을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강도 높은 교통정리에 나서야 할 것이다. 중국·중동의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양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 석유화학의 비극이 희극으로 바뀌는 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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